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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소설>구효서씨의 "그녀의 야윈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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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염치도 없이 마구 꽃피는 4월,우리 소설계에 한 작품이 반짝이고 있다.구효서씨의『그녀의 야윈 뺨』(문학정신 4월호)이 그것.제목이 조금 촌스럽기는 하나 알맹이는 의외로 신선하다.신선함이란 무엇인가.이 물음은 차라리 동숭동 공간이란 어떤 곳인가고 되물어져야 한다.그곳엔 불빛이 있다.소리가 있고,환희와 욕설이 있다.술이 있다.사랑이 있다.프라이드치킨,화강암 조상,크라상,섞어찌개,유경옥 드로잉전이 있고『아가씨와 건달들』의 앙코르 공연이 있다.사주궁합과 토사물과 아서 밀러가 있다.
해질녘 마음 외로울 때 한번쯤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다음 한가지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은행나무를 가운데 두고 육각형 벤치를 둘러싼 젊은이들의 몸짓,마시는 술,노래부르기,손뼉치기 등의 한결같음이 그것.이렇게 놀아야 한다는게 대학참고서에라도 나오는 것인가.좌우간 다들 그렇게 하고 있지 않겠는가.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이곳의 놀이규칙이다.그러나 만일 이공간에 자주 드나들며 그 속에까지 한발자국 들어온 사람이라면 또 하나의 놀이규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연극은 연극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규칙이 그것.
이 바닥에서 밤마다 소극장의 연극배우로 늙어온 작중 화자인 38세의 독신 사내는 이 규칙을 다음처럼 표현하고 있다.『제기랄,현실에서는 뭐가 심각하고 뭐가 대단한 건지 관심도 없고 까막눈인 주제에,연극을 보러 와선 눈을 붉히고 굉장 한 것만 찾더라구.』 연극과 현실을「절대로」혼동하지 않기,이 규칙이야말로동숭동 공간을 산소호흡기이게끔 하는 거멀못이리라.이 규칙성이 실상은 동숭동 공간의 본질을 좀먹는 암적 존재가 아닐까.이런 의문의 제기 속에 작가 구씨의 싱싱함이 있다.작가 구씨는 작중화자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대본에 나오는 표도르 소보친스키 따위의 이상한 이름을 정확히 외우는 일이 사실은 결혼이라든가,먹고 사는 일보다 훨씬 절실하게 느껴지거든.진짜 그래』라고.그가 아직 38세의 독신으로 밤마다 가 슴에 가짜 털을 달고 무대에서 미녀들을 겁탈하는 까닭이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았을까. 金允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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