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책꽂이를 치우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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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도종환(1954~) '책꽂이를 치우며'전문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평생을 학문에 바친 이가 있었다. 천문학.수학.의학.물리학.철학.음악.문학…. 그가 생애에 저술한 책의 종류는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생애에 그는 많은 상을 탔으며 죽었을 때 또한 같았다. 평생을 미화원으로 산 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거리의 골목과 학교와 병원.술집들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날랐다. 먼지 날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고 더러는 저녁도 먹었다. 생애에 그가 받은 상은 가난한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뿐이었다. 죽은 후에 그에게 상을 주는 단체도 없었다…. 도대체 지식은,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향기라면 두 삶은 어느 쪽이 향기로운가. 이 비유가 극단적인 것이라고 당신은 말할는 지 모른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이 미화원의 삶을 지혜로운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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