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11개월…골칫덩이 전락한 제주국제평화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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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안에 있는 제주 국제평화센터 전경(사진·上). 관광객들이 센터 안에 전시된 유명인의 밀랍인형을 살펴보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9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관광단지 안 제주국제평화센터 1층 전시관. 휴일을 맞아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선 다른 전시시설과는 딴판이다.

관광객 최모(43·경기도 성남시)씨는 “주변에서 입장료(어른 3000원)를 내고 볼만한 데가 아니라고 하더라”며 렌터카를 몰고 지나쳤다.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기대하면서 건립한 제주국제평화센터가 문을 연 지 1년을 맞았으나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볼거리가 적어 주민과 관광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약한 전시 내용=제주국제평화센터는 한국관광공사 소유 부지 2만8000여㎡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연면적 7000여㎡ 규모로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사업비는 정부 지원 132억여 원과 도비 25억 원, 관광복권기금 지원 93억 원을 합해 모두 251억 원(건축비 162억 원, 전시시설 89억 원)이 들어갔다.

2층은 평화연구원이 사용하고 1층과 지하에는 전시공간을 뒀다. 1991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이 회담을 한 후 각국 정상 회담이 줄을 잇는 제주를 ‘평화의 산실’로 알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개관 이래 지난달 26일까지 11개월 간 평화센터를 찾은 관람객은 2만2300여 명이다. 한달 2000여 명, 하루 60명꼴이다. 그나마 유료 관람객은 절반을 겨우 넘는다.

지금까지 한 해 동안 입장료 수입은 전기료 같은 운영경비 한 달 분(2000여 만원)을 조금 넘는 2200여 만원이다. 운영 요원 9명의 인건비를 건지는 것도 힘들다. 센터 운영을 맡은 국제평화재단의 김대은 사무국장은 “솔직히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평화센터의 전시물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1층에는 각종 정상회담에 관한 화보와 제주도 현황·특성에 관한 자료가 전부다. 이어 제주를 찾았던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 17명과 박세리·서태지·성룡·정명훈·조수미 같은 연예·스포츠 스타 14명의 밀랍인형이 지하전시실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우여곡절=평화센터는 사업 구상·계획단계에서 ‘정상의 집’이란 이름을 썼지만 ‘남북교류센터’로 바뀌었고 다시 ‘제주밀레니엄관’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제주국제평화센터’라는 명칭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센터에 전시된 밀랍인형도 일관성이 없다. 각국 정상 외에 선정된 연예인 기준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대상을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알 수가 없고, 애초부터 밀랍인형만으로 관람객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비난하고 있다. 건물은 2003년 3월 착공해 2005년 6월 완공했지만, 전시 내용 논란 등으로 2년 이상 지나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제주도는 평화센터에 부지 임대료와 운영비 보조금만으로도 연간 3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최근 평화센터의 운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찬 제주도 평화시설담당은 “수익성만을 따지는 건 곤란하지만, 적정 운영을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1~2년 안에 재단 기금이 모두 확보되고, 건물 내 매장 임대가 이뤄지면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도가 출연해 마련하기로 한 운영기금(250억 원)은 현재 140억 원만 확보됐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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