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원 번 중앙銀 총재 홍콩경제 숨통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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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관료 한 명이 경제난의 숨통을 뚫었다."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금융관리국 런즈강(任志剛.홍콩 이름 얌치콩.사진)총재가 정부 보유 외화를 잘 굴려 '스타 관료'로 떠오르고 있다.

任총재가 지난해 말 1조 홍콩달러(약 1백51조원)를 넘는 '외화보유 기금(外匯基金)'을 운용해 얻은 투자 수익은 모두 8백96억 홍콩달러(약 13조5천억원). 홍콩 증시의 주식에 투자해 2백12억 홍콩달러를 번 것을 비롯해 각국의 주식.채권 투자에서 모두 이익을 냈다.

홍콩의 명보는 "수익률이 10.2%에 달했다"며 "이는 외화기금 운용제도가 생긴 1994년 이후 셋째로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6백80만명의 홍콩인에게 1인당 1만2천8백 홍콩달러(약 1백93만원)의 수입을 안겨준 셈이다.

덕택에 외화기금에서 정부 예산으로 넘겨주는 돈은 당초 예상치의 두배인 2백57억 홍콩달러에 이르렀다.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7백억 홍콩달러(약 10조5천억원)인 홍콩 경제에 단비를 내려줬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부터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 인상과 함께 ▶공무원 정원 감축 ▶정부 기구 축소 ▶복지예산 삭감 등을 놓고 고심해 왔다. 홍콩 정부는 당장 "대학에 대한 지원금 축소 규모를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任총재를 돋보이게 만든 것은 홍콩 경제에 대한 신인도 논란을 잠재웠다는 점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재정적자를 조속히 감축하지 않을 경우 홍콩의 신용등급을 내리겠다"고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 56세인 任행장이 홍콩 금융.통화정책의 조타수를 잡은 것은 93년. 홍콩대를 70년에 졸업한 뒤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어 동물적인 이재 감각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국제 환투기 세력이 홍콩 달러화에 대한 공격에 나서자 과감하게 1천2백억 홍콩달러(약 18조원)를 풀어 환율 방어 전쟁에 나섰다. 결과는 任총재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지난 10년간 외환보유 기금을 굴려 연평균 6.7%의 투자수익률을 올렸다고 한다. 홍콩 증시가 곤두박질쳤던 2001년에도 연 0.7%의 수익률을 냈다.

任총재는 또 자부심이 강한 금융 전문가로 유명하다. 국제적인 금융지인 '유로 머니'등으로부터 몇 차례나 '올해의 중앙은행장'으로 뽑혔다. 지난해 11월 각국 중앙은행장의 연봉 조사 결과 "任총재가 연 1백14만달러(약 13억5천만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각에서 연봉 삭감 주장을 펼치자 "내가 맡고 있는 엄청난 돈을 감안하면 그냥 봉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당당하게 반박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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