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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고령화·백수 '자살의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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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대개 비슷해요. 대부분 자식에게 외면당하거나 병마에 시달리던 분들이죠. 자살한 지 며칠이 지나서 발견되기도 하고…."

서울 광진경찰서 형사과 박성하 주임은 노인들의 자살 사건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박 주임이 말하는 노인 자살의 원인은 고령화 사회의 아픈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의 33%가 61세 이상으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다. <본지 9월 10일자 12면>

한국자살예방협회의 김희주 사무국장은 "중년층 자살자가 줄고 노인 자살자가 느는 것은 고령화 단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라며 "특히 70세 이상의 '황혼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최고"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자살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하루에 35.5명으로,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에 이어 전체 국민의 사망원인 중 4위다.

자살의 원인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노인 자살 외에도 최근엔 실직하거나 일자리를 못 구해 자살하는 청년층이 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2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또 학교폭력에 시달려 "학교가 지옥 같다"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청소년 숫자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그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굳이 자살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3조856억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자살은 이미 방치할 단계를 넘어섰다.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고령화.청년실업이나 청소년 문제는 짧은 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정부는 2004년부터 자살예방 5개년 계획을 만들어 추진 중이다. 늘어나던 자살 사망자 수가 지난해 조금 줄어든 것이 이런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거둔 것일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으로 국민들이 자살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이었다. 정부와 민간단체, 그리고 국민 모두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 자살로 세상을 버리는 사람은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김정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