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관계 정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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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해마다 ‘방송의 날’(9월 3일)을 즈음해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이 열린다. 제작자와 출연자가 모두 상을 받는 화기애애한 자리다. 상을 받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누가 주는 상인 줄 혹시 아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시청자가 주는 상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크게 틀린 답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에서 주는 상이냐고 물으면 그걸 꼭 알아야 하느냐고 되물을 게 뻔하다. 맞다. 몰라도 된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물으면 ‘그에게 그런 상을 주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자, 그러면 여기서 퀴즈 하나. 방송 관련 단체 중 한국방송대상을 시상하는 주체는 다음 중 어디일까. 1. 방송학회 2. 방송협회 3. 방송위원회. 정답은 2번이다. 반면에 매월 시상식을 갖는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은 방송위원회가 시상한다. 세 단체는 하는 일이 다를 뿐만 아니라 보는 시각과 시선이 좀 다르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고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가치관까지 달라져서는 곤란할 듯싶다. 나처럼 제작현장의 PD로 일하다가, 어느 날 교수가 됐다가, 다시 방송사 사장이 되다 보면 예전에 하던 말을 바꾸어야 할 경우가 가끔 생긴다. 이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남편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자와 함께한 세월』이라는 책을 쓴 여성이 나중에 이혼을 한 후 다시 쓴 책의 제목이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사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서 최근 성명서를 발표했다. 스타의 몸값을 낮추자는 제안도 포함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게 이슈다. 둘 사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인데 저작권 등 계약 관련 사항에서는 상하관계나 주종관계처럼 돼 있어서 이를 바로잡아야 드라마가 발전한다는 이야기다.

 이 협회의 사무총장은 MBC에서 드라마국장을 역임한 김승수 PD다. 이에 대해 현재 MBC 드라마국장인 정운현 PD는 “제작비 부담이 커지면서 방송사도 똑같이 어려운 상황인데 외주제작사에 저작권을 양보한다는 것은 그만큼 제작비를 더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한발 나아가 “배우 출연료 상승은 외주제작사 간의 무분별한 경쟁에 의한 것인데 방송사의 책임만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방송가건 정치계건 모이고 흩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문제는 그 명분이 무어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의리로 움직이고 어떤 사람은 합리로 움직인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게 순리라고 변명하는 건 장기적으로 영리한 처신이 아니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주장이 한편으로 일리가 있는 듯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무리가 따르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땐 한발 물러서서 이런 다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유리하면 가고 불리하면 안 가는 건 도리가 아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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