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자본도 출신 성분 따지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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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으로 4년 만에 5조원의 차익을 거뒀다는 소식에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5조라는 돈이 얼마만한 돈인가.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1조2344억원(영업이익)의 4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현대차는 수만 명의 인력과 수천 억원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입해 자동차 200만 대를 전 세계에 팔아야만 했다. 그런데 론스타는 수십 명의 인력과 1조3832억원을 투입해 간단히 5조원을 챙겼다.

사실 외국 자본의 '먹튀'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을 인수해 1조원 넘게 남겼고, 한미은행을 인수한 칼라일펀드도 6600억원을 벌었다.

하지만 배 아프다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차분히 따지면서 고쳐야 할 대목이 있으면 빨리 손질해야 한다. 앞으로 외환은행보다 훨씬 큰 우리금융지주.현대건설.하이닉스 등이 줄줄이 매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요즘 한국에 새로 투자한 외국인을 만나면 두 가지 면에서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하나는 한국의 놀라운 산업 포트폴리오이고, 또 하나는 낙후된 금융산업이다.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철강.조선.화학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나름대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국가를 보지 못했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만큼 황금의 산업 구성을 가진 나라는 흔치 않다"고 감탄했다.

반면 '금산(金産) 분리'에는 혀를 찬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낙후된 금융산업에 경쟁을 촉진해야 할 터인데 왜 보호막을 치느냐"고 했다. 그는 오히려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산업자본이 금융 쪽에 더 많이 흘러 들어와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을 4% 이상 갖지 못한다'는 금산 분리는 낡은 규제다. 예전에 돈이 쪼들리는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여기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지금 기업들은 거꾸로 돈이 남아돌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이석 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와 토종 자본의 구별은 사라졌다. 그런데 왜 국내 자본에는 아직도 금융자본.산업자본으로 출신 성분을 구분하느냐"고 지적했다. 차라리 모든 자본의 국적.업종별 출신 성분을 따지지 말자는 것이다.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제2의 론스타' '제2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