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 부시 APEC 공동회견 '평화협정 줄다리기'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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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실수에 기인한 오해냐,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간의 이견 노출이냐."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 직후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둘러싼 한.미 간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문제의 장면'은 이렇다. 먼저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하게 된 부시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가 그들의 핵 프로그램을 모두 신고하고 핵 프로그램을 전면 해체할 경우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동북아의 평화체계가 새롭게 설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역을 통해 부시의 발언을 들은 노 대통령은 '한국전쟁 종결 선언'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다는 사실을 소개한 뒤 재차 "종전 선언 등에 대한 말씀을 빠트리신 것 같다"고 보충설명을 부탁했다.

이에 한국 측 통역이 부시 대통령에게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붙여 "부시 대통령이 종전 선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내가)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달렸다"고 한 뒤 "감사합니다"며 말을 끝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며 '종전 선언' '평화체제'에 대한 언급을 재차 요청했고,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은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에피소드를 빗대 "다음달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노 대통령은 평화협정을 공식 이슈로 만들기 위해 부시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를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이 부시를 압박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두 정상이 대북 정책을 놓고 충돌한 게 처음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타임스도 이날 '한국전쟁이 부시와 노 간에 충돌을 야기했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오랜 동맹국인 두 나라 정상이 북한과의 전쟁 종식에 대해 이견을 노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노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다 분명히 해 달라"고 두 번째 요청을 하자 배석했던 부시 행정부 관료들이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었다"며 부시 대통령도 노 대통령에게 불쾌한 시선을 던졌다고 묘사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두 정상의 언론 회동 설명 과정이 외교적 상궤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양국 대변인은 이에 대해 "통역 실수로 인한 해프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외교라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언급을 하기로 했는데 미국 측 통역의 실수로 이 부분이 생략되자 노 대통령이 거듭 이를 촉구한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고든 존스로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통역 과정에서 발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박소영 기자, 시드니=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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