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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센트리즘(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구문명은 이집트군이 에게해를 정복해 탄생시켰다…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다… 소크라테스도 흑인이었고,수학도 흑인에 의해 발명되었다… 베토벤의 직계선조가 스페인 군대에 속해있던 무어족의 군사였으므로 그 역시 흑인으로 봐야 한다….』
이것이 지난 30여년간 「일류문명은 검은 대륙에서 태어났다」는 이른바 아프로센트리즘(Afrocentrism)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이같은 논거는 당초 일부 흑인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으나 몇몇 저명한 백인학자들까지 동조함으로써 세계 학계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90년을 전후해 『검은 아테나여신』이라는 4부작의 연구저서를 펴낸 코넬대 정치학교수 마틴 버널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유럽의 학자들이 왜 서구문명에서 이집트와 가나안을 잘라냈는가를 파헤치면서,그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반유대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흑인문화 기원설에 부정적인 대다수 백인학자들의 『극단적인 아프로센트리즘은 그 역시 인종차별주의와 통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흑인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아프리카의 영향력을 추적하고,아프리카인들이 수학·과학·음악·미술·언어 등의 기본원리를 생각해 냈음을 가르치는데 교육의 최대역점을 두고 있다. 가령 전교생이 흑인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학교에서는 조회시간마다 「흑인처럼 생각하고,흑인답게 행동하고… 흑인을 사랑하고,흑인답게 살 것」을 맹세하도록 시킨다.
지난 5년간 1만5천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3백50년간의 백인통치 종지부를 찍고 26일 총선을 실시하게 된 남아공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만델라 의장도 흑인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그동안의 투쟁경력을 감안하면 그의 집권은 당연해 보이지만 전세계적인 아프로센트리즘의 급격한 확산도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4천만 인구중 난생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는 1천6백만명의 흑인들이 수백년동안 길들여져온 백인우월주의로부터 어떻게 벗어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민권투쟁에만 집중돼온 만델라 의장의 정치적 아프로센트리즘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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