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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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12)그 속에서 가장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 퍼져나간 소문이란 탄가루와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목소리를 낮추어 몰래 수군거리면서 퍼져나간이야기란,탄가루 오래 마신 남자들이란 제구실을 하기 어렵다는 거였 고 그래서 일본인 숙소 쪽에는 남자 구경을 제대로 못하는일본여자들이 많고,운 좋게 그런 여자와 눈이 맞은 조선사람도 꽤 된다더라 하는 소리였다.
잡혀간 광수는 어디에 갇혀 있는지 소식을 모른채 그가 저질렀다는 도둑질과는 동떨어져서 징용공들 사이에는 그렇게 때없이 음침한 이야기들이 꽃을 피워나갔다.누군가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그러나 광수의 이야기에는 이제까지와 는 다른 점이 있었다.도둑질도 나쁘고 남의 집 여자를 건드렸다니 그건 더나쁜 일이기는 하지만,어떠냐,그게 일본여자에게 한 짓이고 일본집에 들어가 물건 훔친 건데 같은 조선사람으로야 눈감아 줄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들이었다.
낮일을 끝내고 돌아온 인부들이 숙사 앞 공터에 앉거니 서거니저녁밥이 나올 시간을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었다.해가 바다로 잠기면서 서쪽 하늘에 벌겋게 붉은 빛을 남겨 놓고 있었다.숙사지붕 위를 지나가던 갈매기 하나가 똥을 갈기며 날아갔다.
『저런 니기미랄 게 있나.』 복술이가 화를 낸다.
『조선놈은 똥이나 먹어라야 뭐야.』 간신히 똥 맞는 것을 피한 송씨가 어이없어 하며 사람 좋게 웃는다.
『갈매기 주제에 사람 괄시하나.』 웃고 있는 송씨를 보며 등뒤에 서 있던 오서방이 느릿느릿 말했다.
『거 세상에 안 당해야 할 게 그거드라구.갈매기 똥 맞는 거말야.이거야 어디 가서 분풀이를 할 데가 있나 하소연을 할 데가 있나.』 옆에 섰던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오서방이 갈매기 똥을 맞아 본 모양일세 그려.
』 『그러니까 하는 소리지.달리 무슨 수가 있어야지.그래서 할수 없이 한마디 했지.』 『뭐라구?』 하늘을 향해 팔뚝질을 해대면서 오서방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에라 이놈아,난 네 꺼 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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