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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춧돌만 뒹구는 황룡사로 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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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05면

감은사 금당 터에서 바라본 동삼층석탑. 금당이 평지에서 약간 뜬 형태가 되게끔 장대석 밑에 빈 공간을 둔 설계가 독특하다. 문무왕의 유지를 이어 절을 완공한 신문왕이, 동해의 용이 된 부왕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든 공간으로 전해진다.

구층 목탑의 재발견

홀로 가는 수학여행 '경주의 재발견'

경주 시내 주요 유적지는 은은한 조명을 갖춰 밤이 되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안압지(위), 노동동·노서동 고분공원(중간), 첨성대의 야경(아래).

이것도 ‘발견’이라 할 수 있을까. 다시 찾은 경주에서 새로 만난 것은 황룡사탑이었다. 769년 전 몽골의 말발굽이 할퀴고 간 뒤로 더는 없는 그 탑 말이다. 부러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는데 몇 번을 어른거렸다. 동남산 부처바위의 마애불에서, 빛과 공기로 음각된 경주타워에서, 주춧돌만 남아 뒹구는 구황동 벌판에서. 친밀하고, 웅장하고, 애잔했다. 사라진 9층 목탑은 그렇게 경주의 시공간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경주 시내 안압지에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는 도로와 교차하는 북쪽 도로를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허허벌판이 펼쳐진다. 여느 버려진 논밭처럼 휑한 이 대지가 황룡사가 있던 자리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새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나자 대신 절을 짓고 황룡사라 이름했다고 한다. 선덕여왕 14년(645) 구층목탑이 완성되면서 4대 93년에 걸친 증축이 끝났다.
한때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다지만 영화는 반세기만에 끝났다. 일찍이 교과서에서 배웠듯,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골의 침입 당시 불타버렸다. 한 달간 계속된 불길 속에서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보다 4배나 컸다는 황룡사 범종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통일왕조의 자부심도 함께 재가 되었다.
지금 터에 남은 것은 건물·탑·불상이 있던 자리를 알려주는 초석뿐이다. 초석 하나하나의 둘레만 한아름이 넘는다. 경내를 경계 짓던 자리는 논두렁이나 다름없이 돼버렸다. 그나마 번듯하게 터가 드러난 것도 1976년 시작된 발굴작업 덕분이다. 일대 민가 100여 동을 철거하고 사유지 약 18만5000m²(5만6000여 평)를 매입하면서 총면적 약 6만6000m²(2만여 평)의 사찰 터가 꼴을 갖췄다.
눈길 닿는 자리엔 잡초뿐이다. 한쪽엔 수백 수천 개 돌들이 발굴 당시 번호를 새긴 채 차곡차곡 괴어 있다. 둥근 홈들에 빗물이 찰랑인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이끼가 끼고 부식된 흔적에서도 애초 위용이 가시지 않는다. 지금껏 보존됐더라면 인도의 타지마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부럽지 않은 관광자산이 됐을 텐데. 아쉬움은 경주 전체에서 느끼는 허전함과 궤를 같이한다. ‘천년의 보고(寶庫)’라고 칭송하지만 온전한 왕궁 한 채 남아있지 않은 도시 아니던가. 그 때문에 문화계 일각에선 ‘황룡사탑만이라도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그 아쉬움을 일부나마 달래줄 것이 경주타워다. 올 세계문화엑스포에 맞춰 공개된 경주타워는 황룡사탑을 원형으로 제작됐다. 보문호를 돌아 신시가지에 진입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면 홀로 도드라져 시의 고졸한 멋을 해치는 듯하나 가까이서 올려보면 웅장함에 절로 압도당한다. 전체 높이가 아파트 30층에 해당하는 82m. 구층목탑의 높이가 225척(尺)이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랐다. 음각된 부분은 65m인데, 이는 당나라 문헌에 기록된 탑의 높이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높이만큼 1500년 전 신라인들이 목재를 자르고 꿰어 쌓았을 것을 생각하면 새삼 감탄스럽다.

아무리 현대인의 기술력이 탁월하다 해도 사라진 탑의 형체를 어떻게 재현했을까. 실마리가 돼준 것이 동남산 부처바위다. 경주시 배반동 탑골마을에서 개울 따라 10여 분 올라가면 옥룡암이 나오는데, 그 대웅전 뒤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9m, 둘레 30m의 이 바위엔 삼면을 둘러가며 사방사불(四方四佛·동서남북 각 정토에 있는 네 부처)의 정토세계가 새겨져 있다. 그중 북면 중앙엔 석가여래의 좌상이 있고 좌우에 날렵한 탑이 보인다. 학자들은 동쪽 구층탑을 황룡사 목탑의 원형으로 추측하고 있다. 경주타워의 음각 부분도 이 형태를 변주하고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벗하며 수풀 속에서 수천 년을 버텨온 부처바위 마애탑은 보기만 해도 따사롭다. 인간의 손때가 닿지 않는 구중산골에 있어 그나마 온전히 남았구나 싶어 고맙다. 누구에게 내보일 요량 없이 묵묵히 바위를 파고 쪼았을 이름 모를 석공의 수고에 숙연해진다. 그 불심이 오늘날 경주타워로 승화됐으니 억겁의 연이 참으로 장하다.

높이 5.2m, 무릎 폭 3.5m로 남산 불상 중 가장 거대한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위). 국립경주박물관 바깥 뜰에 단정히 앉아있는 목 잘린 불상들. 유학자들이 파괴하여 분황사 우물에 묻은 것을 발굴했다(중간). 고색창연한 골기와집들이 모여 있는 양동마을은 15~16세기에 형성돼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보여준다(아래).

다시 찾는 경주, 발견하는 재미
혼자 가는 수학여행은 무릇 남산을 거쳐야 한다. “남산에 오르지 않고 경주를 봤다고 말하지 마라”는 게 경주 예찬론자들의 한결같은 일성(一聲)이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풍경만이 아니라 40여 개 골짜기엔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지방유형문화재 11점 등 귀한 유적이 산적해 있다. 특히 삼릉 입구에서부터 금오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삼릉골 일대엔 고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 18개 불상이 즐비하다. 한 시간여 가볍게 등산한다 생각하고 상선암까지 올라가면 남산 불상 중 가장 크고 우수하다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을 볼 수 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단정한 눈썹이 신령스러운 산안개와 어우러져 ‘서라벌의 미소’를 보여준다.
가장 쉽게 수학여행을 재현하는 방법은 경주시내를 거니는 것이다. 신라의 옛 궁궐 터였던 반월성을 중심으로 계림·첨성대·대릉원·안압지·국립경주박물관 등 주요 유적지가 모여 있고, 이들은 모두 자전거나 도보로 돌아다니기 충분한 거리에 있다.
그중 대릉원은 약 12만5600m²(3만8000여 평)의 평지에 23기의 능이 솟아있는 경주 시내 최대 고분군이다. 맨 안쪽엔 금관·천마도를 비롯, 1만15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던 천마총이 위치해 있다. 대릉원의 아름다움은 울룩불룩 솟아있는 고분들의 겹침과 조화로움에 있다. 휠체어·유모차를 밀고 한 바퀴 돌기에도 편안한 산책 코스다.
수학여행 이후 가장 달라져 있는 것이 야경이다. 첨성대·안압지 등 주요 유적에 조명시설이 갖춰져 대낮에 보던 풍경과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은은한 불빛 아래 여인네 가슴처럼 둥글둥글 풍만한 고분들을 뒤로하고 온화한 첨성대의 윤곽을 보고 있노라면 문화재적 의의와 별개의 멋이 느껴진다.
수학여행 필수코스였던 불국사와 석굴암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왕 토함산 자락을 방문할 거라면 더 내쳐 감은사 터까지 들러보자. 유홍준(현 문화재청장)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탑이여”를 절창한 이래 대중적으로도 각광받는 명소가 됐다. 동서 두 개의 탑 중 서탑은 해체 복원 중이라 덮개로 가려져 있다.
불교 유적의 집산지로만 경주를 알고 있다면 강동면 양동마을과 옥산서원·독락당에선 유교문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양동마을엔 150여 가옥과 360여 채의 건물, 15개의 정자가 낮은 언덕과 골짜기마다 숨바꼭질하듯 배치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재미가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미적 소양보다 지적 충전이 필요하다면 불국사 인근 신라역사과학관에 들러보자. 첨성대·석굴암을 모형으로 전시해 과학적 조형원리를 상세히 설명해줘 자녀뿐 아니라 부모 세대에도 생생한 학습이 된다. 바로 옆엔 신라 토기 제작을 재현하는 도예가마가 여러 채 조성돼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준다.
경주 관광에 관한 가장 발 빠르고 광대한 정보는 경주시 경주문화예술관광 홈페이지(http://culture.gyeongju.go.kr/culture)에 있다. 음식·숙박·교통 정보는 물론 주요 관광코스 추천과 함께 관광지도도 출력할 수 있다. 신라문화재 지킴이를 자처하는 신라문화원(http://www.silla.or.kr)에선 매달 테마가 있는 경주문화기행 외에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 ‘추억의 경주 신혼여행’도 진행하고 있다.

경주타워에서 펼쳐지는 멀티미디어쇼(위). 백남준 특별전에 전시된 비디오아트 ‘백팔번뇌’(중간). 엑스포공원 내 억새풀 숲과 어우러진 조각공원(아래).

경주에 관해 읽어보면 좋을 책(인터넷 서점 알라딘 추천)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돌베개 펴냄
『살아서 꼭 가봐야 할 경주 여행 109선』정선중 지음, 혜지원 펴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창작과비평사 펴냄
『천년 고도를 걷는 즐거움 』이재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내달 26일까지 계속되는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멀티미디어쇼·백남준 특별전 압권

올해로 5회째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시설과 규모 면에서 역대 최대로 치러진다. 1998년 첫해엔 가건물 몇 채와 듬성듬성한 나무뿐이라 땡볕을 피할 길이 없었고, 볼거리도 빈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설전시를 목표로 건물과 대지를 대폭 단장했다.
최대 야심작이 440억원을 투자한 경주타워다. 황룡사탑 음각 부분을 비워 광장처럼 조성한 텅 빈 설계도 인상적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앞쪽으로는 보문단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편엔 ‘시간의 정원’ ‘조각 공원’ 등 잘 조경된 경관이 펼쳐져 볼거리가 풍성하다. 전망대 아래층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디지털로 선보이는 디지털문화전시관이 들어섰다.
엑스포 기간의 가장 주된 볼거리도 경주타워에서 펼쳐진다. 개막식에서 이미 위용을 자랑한 멀티미디어쇼가 그것. 레이저·불꽃·조명·음향이 어우러져 황룡사 9층 목탑의 탄생설화를 현대적으로 들려준다. 10월 26일 폐막 때까지 매일 해진 뒤 20분간 한 차례다.
경주타워가 수직의 힘을 자랑한다면 바로 옆 ‘엑스포문화센터’(1만11㎡·지상 3층 지하 1층)는 수평적 미를 과시한다. 신라 건국설화에 나오는 난생(卵生) 신화를 모티브로 한 알 모양의 돔형 지붕이 눈에 쏙 들어온다. 앞면의 56개 유리벽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부터 경순왕까지 56명을 상징한다. 내부엔 첨단 공연 시스템을 갖춘 740석 규모의 극장과 전시실·카페테리아 등을 갖췄다.
18만1819m²(5만5000평) 부지에 신라 왕경(王京)의 자연을 재현한 ‘왕경숲’엔 선덕광장(야외공연장), 계림지(숲속 연못), 주작대로(주 대로) 식의 이름을 붙여 서라벌의 향취를 되살리고자 했다. 왕경숲을 비롯해 시간의 정원, 조각공원 등은 엑스포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산책코스다.
올 엑스포엔 세계 72개국 1만여 명의 문화예술인이 참가할 예정이다. 영상·체험·공연·전시 등 행사도 40여 가지가 준비돼 있다. 백미는 문화센터에 차려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특별전. ‘백팔번뇌’ ‘고인돌’ ‘단군’ 등 총 107점에 이르는 백씨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또 세계 공연예술축제·꼭두극 축제를 비롯해 대회 처음으로 비보이(B-boy)들의 공연도 펼쳐진다. 3D 입체영화 ‘토우대장 차차’와 세계 입체영화제도 조직위가 내세우는 볼거리다. 다만 차림표가 ‘소문난 잔치’ 같아 ‘먹을 것’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엑스포 기간 동안 경주 시내 전체에서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국립경주박물관은 9월 11일부터 10월 28일까지 두 가지 특별전을 연다.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신라 왕실의 주자(注子)전’과 ‘과거를 비추는 거울-소장 동경전’이다. 경상북도 박물관협의회는 엑스포공원 내 ‘처용의 집’에서 ‘민중의 삶, 그 파노라마’라는 주제로 16개 박물관의 대표 유물 400여 점을 전시한다.
조직위 측은 올 대회 이후론 엑스포를 상설 개장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폐막 때 일단 닫았다가 내년 4월에 재개장하는 것이다. 공연과 일부 전시물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시·행사도 연중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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