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아이들 가난 대물림 끊어줄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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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씨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되나요. 친구들까지 모두 건강해야 내 아이가 바르게 자랄 수 있지요.”

 서울 행당동 작은 골목에서 무료 공부방 ‘조이 스터디’(02-2282-5694)를 운영하는 신선영(48)씨는 오지랖이 넓었다. 2004년 5월이었다. 또래의 주부들은 자기 자녀 교육 걱정하기도 바쁘던 때, 그는 달동네 아이들의 교육을 맡겠다고 나섰다.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1996년 돌아온 신씨는 2000년부터 서울국제학교에서 안정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국제학교는 교육 환경이 남부러울 것 없이 좋았어요.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소득층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구요.”

 신씨는 곧바로 집 근처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야학처럼 퇴근 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영어를 가르친다는 계획이었다. 공부방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영어뿐이 아님을 알게 됐다. 갈 곳도, 보살펴 줄 어른도 없어 공부방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빚을 내서 다세대 주택의 작은 방을 얻고 구청에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해 보조금을 받아내 방과후 아이들을 돌보는 공부방으로 규모를 늘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구구단을 못 외우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학력도 문제지만 가정 불화로 자신감도 꿈도 없는 게 가장 안타까웠어요.”

 신씨는 그때부터 아이들의 선생님이자, 보호자이자 상담자가 됐다. 학업부터 잘못된 생활 습관까지 친자식을 기르는 마음으로 가르쳤다. 초등학생 몇 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2년 만에 30여명이 드나드는 동네 아이들의 사랑방이 됐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방과 후 이곳에서 배우고 놀며 밤 늦게까지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을 떠돌던 중고생들을 특별 지도해 검정고시에도 합격시켰다. 정규 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택한 외아들 한전(17)이도 이곳에서 공부해 대입자격 검정고시에 붙었다.

 “내 아이가 배울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꾸준히 배우고 익히면 사람답게 대접받을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죠.”

 신씨는 요즘 공부방 이전 문제로 골치가 아프단다. 공부방이 28㎡(8.5평)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지원금 170만원과 개인후원금 기업 후원금으로 간신히 운영하고 있지만 아이들 교재비와 부식비, 상근 보조교사에게 월급(90만원)을 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에서 공부방 이전 자금으로 8000만원을 보조하겠다고 약속해 새 꿈을 키우고 있다.

 “운영이 쉽지는 않지만 포기할 수가 없어요.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는 한 공부방 문은 계속 열어둘 생각입니다.”

 한편 정부는 제8회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신씨처럼 소외 계층을 위해 묵묵히 봉사해 온 사회복지계와 복지참여 기업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일 서울 여의도 63시티 2층 국제회의장에서 기념식을 연다.

 기념식에서는 1951년 전쟁 고아를 위한 애경원을 설립해 56년 동안 보육사업을 벌여온 손관익(83.덕일재단 이사장)씨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등 사회복지 유공자 152명이 훈·포장과 장관 표창을 받는다.

김은하 기자<insight@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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