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간 전쟁보다 내전이 더 참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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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반군세력인 수단해방운동(SLM) 소속 병사가 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주바 시민들을 정렬시키고 있다. 주바는 반군 자치지역인 남부지역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주바 AP=연합뉴스]

5일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아프리카 북동부의 수단 다르푸르. 우기를 맞아 녹음이 한창이다. 겉보기엔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최근 4년간 여기서 20여만 명이 내전으로 숨졌다. 그래서 '살육의 땅'으로 불린다.

공항에 내려 이 지역 중심 도시인 알파시르로 가니 금세 풍경이 달라진다. 변변찮은 집들이 대부분 부서진 채로 방치돼 있다. 기관총을 탑재한 트럭은 염소와 당나귀 사이를 질주한다. 도심 곳곳이 아직도 위험지대다. 상점가를 지나는데 인도 출신의 유엔 직원은 "몇 주 전 부족 간 충돌로 7명이 숨진 곳"이라고 일러준다. 그는 "나라 간 전쟁보다 한 나라 안에서 부족 간 살육이 더 참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올 봄부터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게 이 정도라고 한다. 알파시르는 아프리카연합(AU) 소속 군인들이 지켜주는 덕에 희생자가 적은 편이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는 살벌한 곳이다.

인종 학살은 대부분 인종과 종교가 다른 상황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다르푸르에선 예외다. 이슬람 교도끼리 서로 죽이고 있다.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살해했으며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능욕했다. 유엔에서는 "기후 온난화로 북부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그쪽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이런 참혹함이 빚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남부 주바 출신 언론인 샘슨 리버티는 역시 인종 차별을 근본 원인으로 분석한다. 그는 "북부에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들이 똑같은 흑인인데도 남부 사람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한다며 무차별 학살했다"고 비난했다.

다르푸르의 비극을 절감할 수 있는 곳은 난민촌이다. 2003년 이후 난민만 250만 명이나 발생했다. 이들 중 극히 일부만 현재 난민촌에 수용돼 있다. 4만8000명이 거주하는 알살람 등 3곳에 난민 수용소가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5일 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는 "현장의 비참함을 직접 눈으로 보니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어 "다르푸르 사태가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에서 기인한 점이 있는 만큼 유엔 차원에서 수자원 개발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다르푸르 사태는 최근 국면 전환을 맞고 있다. 7월 반 총장 주도로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군 파병 결의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10월부터 유엔 평화유지군 2만6000명이 살육을 막기 위해 다르푸르 곳곳에 주둔하게 된다. 6일엔 반기문 총장과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수단 정부와 반군 간의 평화회담을 다음달 27일부터 리비아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도 늘었지만 특히 구호단체 직원들에 대한 공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공보담당 에밀리아 카셀라는 "올 들어 무장세력에 당한 사건만 77건"이라고 말했다.

알파시르(수단)=남정호 특파원

◆다르푸르 사태=2003년 발생한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의 내전으로 인한 재앙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20만 명 이상이 숨졌으며 난민이 250만 명을 넘음으로써 '21세기 최대 재앙'으로 불린다. 서부 지역에 밀집한 흑인 푸르족이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이들을 학살하면서 시작됐다. 국제사회가 나서 지난해 5월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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