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토론방] 10만원권 발행 어떻게 생각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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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만원권 발행에 대해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신용카드.폰뱅킹 등이 널리 사용되는 만큼 쓰임새가 적고, 검은 돈의 거래를 더욱 부추기며, 물가 상승을 부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반면 찬성하는 이들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물가가 많이 올랐으므로 편리한 거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준술 기자

*** "수표 거래 큰 불편 하루빨리 발행해야"

10만원권 지폐가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화폐발행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지급결제를 위한 자기앞 수표 발행에 연간 4천6백억원을 소비하고 있다. 이렇게 비싼 비용을 들여 발행하지만 수표의 평균 수명은 7.9일에 불과하다. 이를 10만원권 지폐로 바꾸면 초기 발행비용은 수표보다 조금 더 들지만 평균 수명이 4년 이상이기 때문에 이득이다.

고액권을 발행하면 화폐를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최고액 단위가 너무 작다. 선진국의 최고액 지폐를 보면 미국 1백달러(약 12만원), 유로권 5백유로(약 76만원), 일본 1만엔(약 11만원), 영국 50파운드(약 11만원) 등이다. 따라서 경제적 국경이 없는 국제화시대에 상대적으로 낮은 원화의 가치는 대한민국이 만성적인 인플레 국가, 화폐가치가 불안정한 국가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소액 지폐를 이용하는 데 따르는 불편도 크다. 시장에서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다 보니 10만원권 수표의 사용이 늘고 있다. 그러나 수표를 쓰는 사람은 신분을 증명해야 하고 받는 사람은 이를 다시 은행에 입금해 현금화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 경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김장희 국민銀연구소 선임위원

*** "통화가치 불안한 데 고액권 왜 서두르나"

폐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질적 측면으로 통화가치를 안정시키고 그 뒷받침이 되는 금융제도를 효율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화폐도안 개선이나 고액권 발행과 같은 외적인 면을 신경써야 한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질적인 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는 LG카드 사태로 표출된 금융 불안이나 부동산 거품으로 야기된 통화가치의 불안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은 질적인 화폐제도 개혁보다 계산의 편리성만을 고려한 고액권 발행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고액권이 발행되면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발생과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데 막대한 비용이 소요돼 시장에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 고액권 발행은 실물경제에는 계산을 간편하게 해준다는 것 이상의 경제적 혜택을 보장하지 못한다.

물론 고액권을 발행하면 거래의 불편을 덜어 주고 연간 6천억원에 달하는 은행들의 10만원권 수표발행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앞수표 제도를 '시중은행권'제도로 개선하면 고액권을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앞수표를 시중은행권으로 바꿔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우리나라에는 이미 직불카드가 도입돼 있고 스마트카드도 곧 도입될 분위기다. 고액권을 발행해 국내통화에 불필요한 교란 요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김한응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

*** 찬성

▶10만원권 발행을 반대하는 건 마치 '구더기(불법자금)'가 무서워 '장(발행효과)'을 못 담그는 것과 같다. 불법자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정치를 개혁하거나 제도를 바꿔야지, 고액권 발행을 막는 것은 피상적인 방법일 뿐이다. 일부 썩어가는 나무만 보지 말고 무성하게 자라날 숲을 보자.

▶우리나라에선 3만원 이상의 물건을 살 때는 신용카드를 쓴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오르고 경제규모도 전보다 커졌지만, 유통되는 주요 화폐는 30년 전에 발행한 1만원권이기 때문이다. 고액권을 발행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한다. 그러나 달라진 경제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10만원짜리 자기앞 수표는 사실상 1회용이어서 엄청난 비용이 소모됐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현금처럼 사용됐지 않았는가. 이제는 10만원짜리 화폐를 찍어낸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각 제품의 가격표와 은행 전산망을 바꿔야 하는 등의 일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일단 1만원짜리 10장보다 10만원짜리 1장이 편리하다는 점에서 찬성한다. 물론 그만큼 분실의 위험도 따르긴 할 것이다. 또 1만원권을 10장 찍는 것보다 10만원권을 1장 찍는 비용이 더 싸다는 장점도 있다. 1만원권이 발행된 이후 경제 규모가 꾸준히 커져 이제는 거래가 조금씩 불편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액권이 나온다고 부패가 더 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1백억원어치의 뇌물이 고액권으로 건넨다고 1천억원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반대

▶지불수단이 현찰뿐인가. 신용카드는 장롱에 모셔둘 건가. 정보화 사회에서 10만원권 지폐가 무슨 소용이 있나. 고액권이 없어서 쇼핑을 못한 건 아니다. 단지 구매력이 없을 뿐이다.

▶택시를 탄 뒤 기본요금이 나왔을 때 10만원짜리를 내면 이 돈을 바꾸기가 얼마나 불편할까. 식당에서 밥 한 그릇을 먹고 10만원짜리를 내밀면 누가 받아줄까. 이런 애물단지를 누굴 위해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결국 부자들만의 잔치는 아닌가.

▶새로운 고액 지폐를 발행하면 국민의 주머니에서 비용이 충당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득은 '검은 돈'의 수혜자들이 받을 게 뻔하다. 받기 좋고, 보관하기 편리하고, 추적당할 걱정도 없고…. 도대체 일반 국민은 어떤 혜택을 보는가.

▶10만원짜리가 쓰이면 신용카드나 수표를 사용하면서 나타난 소비의 투명성이나 자금 흐름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암시장에서의 기금 조성이나 돈세탁도 쉬울 것이다.

▶10만원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신용카드나 폰뱅킹 등을 통한 거래를 유도해야 세금도 제대로 산정하고 경제가 더욱 투명해질 것 같다.

▶고액권은 현재 쓰이는 수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낭비적인 측면이 있지만 고액권을 만들면 결국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돈을 계속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식당에 돈을 다발로 가져다 주고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과시욕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과소비가 늘고 물가가 오를 게 분명하다.

▶경제도 어려운데 좀 여유로울 때 이런 논의를 하면 안 되나. 서민은 1만원짜리 하나에 울고 웃는다.

◆'온&오프 토론방'의 다음 주제는 '시민단체의 낙천.당선.낙선운동 어떻게 생각하나'입니다. 인터넷 중앙일보 사이트 www.joongang.co.kr에 김민영(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심규철(한나라당 의원)씨의 찬반 의견이 올라 있습니다. 독자 토론 내용은 2월 3일자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