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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43) 광주 서구 한나라당 이정현씨

중앙일보

입력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호남의 정치적 리더십과 정치 지형의 변화는 필연입니다. 저는 한나라당의 간판을 걸고 광주 서구에서 당당히 출마하겠습니다. 광주는 저의 고향으로, 탯줄을 묻은 곳이예요. 저로서는 피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광주 서구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를 준비 중인 한나라당 정책기획팀장 이정현(44)씨는 “이번 총선에서 광주는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한국 정치사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정치발전의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한국 정치를 선도해 온 광주가 이제 지역정치 타파의 물꼬도 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변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격이라는 광주 출마를 결심한 이씨는 호남 토박이다. 전남 곡성 목사동초등학교를 나와 순천 주암중을 거쳐 광주 사레지오고등학교를 졸업했다. 85년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국회의원 비서 생활을 4년 했고, 88년 민정당 사무차장 보좌역으로 특채돼 줄곧 한나라당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로 일했다. 순수 호남 토박이에 골수 한나라당맨인 셈이다.

그는 한나라당 안에서 전략가로 통한다.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후보선거대책본부 전략기획팀장을 맡았고, 그에 앞서 2000년 16대 총선 땐 미디어기획단장으로 활약했다. 평소 당에서 맡았던 보직도 정세분석팀장, 자료분석팀장, 여의도연구소 기획팀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담당관 등으로 정세분석 또는 기획 쪽이다.

하루에 같은 신문을 세 번 읽는 그는 2000년 총선 당시 미디어기획단장으로 있으면서 TV와 라디오 연설원으로 수도권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던 후보자 12명을 내세웠다. 유명 인사 대신 전원 후보자를 기용한 이 전략은 주효했다. 12명 모두를 당선시키는 개가를 올린 것.

지난 대선 땐 젊은 유권자의 증가라는 시대 흐름에 맞춰 당 홍보팀을 32세 이하의 젊은 세대로 전원 교체하고 지도부는 외부의 간섭을 막는 병풍 노릇만 해 달라고 건의했었다. 이 아이디어는 그러나 외면 당했다. 이씨는 지금도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총선 전략을 짤 때도 외부 컨설팅과 TV·인터넷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또 오랜 당직자 생활로 한나라당 내부의 사정에 밝다.

“한나라당은 정권의 잘못에 의존하는 경향이 너무 뚜렷합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반사이익조차 못 챙기고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반노무현세력을 우군화하는 데 실패했어요. 그 결과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한 상황에서도 ‘대안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 서구에서 출사표를 던진 이정현 한나라당 정책기획팀장(오른쪽)이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이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5.18 망월동 묘역에서 분향하는 것을 돕고 있다. 5.18 당시 광주시장은 고 구용상 의원으로 이씨는 그의 비서관을 지냈다. 이씨가 세상의 평판과 무관하게 존경한다는 이 전 총재와 구 전 시장은 공교롭게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동기 동창이었다. 구 전 시장에 대한 책도 낸 이씨는 구 시장에 대해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망월동 묘지를 조성한 구 전 시장의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그는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정권비판 정서에서 벗어나 모범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선택과 집중 방식의 정책활동을 통해 기본적인 방향을 설정한 뒤 ▶영남지역당·노쇠당·수구당·부패당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것.

“한나라당은 지금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몸집이 커진 공룡이 멸종의 길에 들어선 것에 비유할 수 있죠. 한나라당은 스스로 버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다 죽을 겁니다.”

정치권 전반이 처한 난국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는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제시했다. 1년에 1백10조원이 넘는 예산 편성과 집행권, 대형 인허가권, 이권사업 등이 대통령의 절대 권력 아래 있기 때문에 대통령 주변의 권력비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선 국민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헌법은 독재정권 시절 여야가 주고받기식 흥정을 통해 만들어 기형적입니다.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제대로 제한할 수도 없구요. 시대적·국민적·환경적 변화에 맞게 국민 참여로 반영구적인 국민헌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회 안에 국민헌법제정연구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씨는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을 5단계로 제시했다. 정치 정상화-국민 대통합-국가경쟁력 강화-선진강국 건설-통일한국 실현이 그것이다. 그는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나서야 한다고 강변했다. ‘아는 사람’,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먼저 적폐(積弊)를 고백하고 스스로 윤리강령을 만들어 자정 운동, 사회 환원운동, 나라 구하기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주류인 현역 의원들에 대해서는 권위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면 중형차와 검정색 승용차 안 타기, 비서가 차문 열어주고, 출발하면 차 뒤에다 대고 인사 안 하기 운동을 벌일 겁니다. 의원의 개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밤 늦도록 운전기사를 대기시키는 문화도 고쳐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국민의 아픔과 눈물을 볼 수 있습니다.”

최영재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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