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R시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로코 제2의 고도 마라케시는 붉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건물들 색깔이 붉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도시주변의 짙은 녹색 올리브 들판,남쪽을 가로 지르는 아틀라스 산맥의 흰눈,도시의 붉은 건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다.
예부터 멀고먼 사하라사막을 넘어 낙타탄 대상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 마라케시다. 지금 이곳에 세계의 무역 경제를 주름잡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무역협정에 최종 서명하기 위해 세계의 경제관료들이 모여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수락 및 가입이 중요의제지만 포스트 UR에 대비한 뉴라운드를 둘러싼 광범위한 논의가 물밑에서 진행중이다.
바야흐로 7년6개월에 걸친 UR 대장정을 마무리짓고,새로운 국제간 분쟁점이 될 환경(GR) 노동(BR) 기술(TR)이라는 이른바 새로운 3R시대로의 역사적 전환을 알리는 모임이 마라케시에서 열리고 있다.
이중 특히 그린라운드(GR)는 이미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국제환경기준을 만들어 이를 지키지 못할 때는 공해방지에 소요되는 비용을 상계관세 형태로 부담금을 물리자는 제도다. 또다른 형태의 무역장벽이고 보다 전문적인 협상기술이 요청되는 어려운 과제가 눈앞에 닥쳤다.
우루과이라운드를 「우루과이 사태」로만 알아왔던 우리로서는 7년이 넘는 협상기간이 있었지만 어떤 전문가도 양성하지 못했고 어떤 노하우도 축적하지 못한채 다시 3R시대를 맞고 있다. 다만 지금 남은게 있다면 3R,즉 3D라는 혐오감밖에 없다는게 정부 관리들의 농담같은 진담일 것이다. 협상은 어렵고 결과는 위험하고 더러우니 관련분야 관리들은 협상에 끼어들기조차 싫어하게 됐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알아서인지 이번 GR협상부터는 협상대책·산업대책·환경대책 등 3개반을 구성하고 통상법률 민간전문가를 대폭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민간 전문가 참여도 중요하지만 정부관리의 전문화가 더욱 시급한 과제다. 미국 무역대표부 같은 협상 통괄기구를 설치해 민간전문가와 정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다자간 노동·기술협상 등 국제화시대에 넘어야 할 고개는 숱한데 정부내 분위기가 3R,즉 3D여서는 결코 국제화시대를 이겨낼 수 없다. 마라케시 각료회의를 보면서 3R시대의 우리 협상능력을 다시금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