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한·일 우호 ‘징검다리’역 40여 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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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기업소설인 『불모지대』의 실제 모델인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전 이토추(伊藤忠)종합상사 회장이 4일 새벽 도쿄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95세.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40여년 동안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끼쳐 온 거물 밀사(密使)였다.

 재계 거물이면서도 한국의 외교·정치 분야에 깊은 이해와 인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일 양국 간에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해결됐다. 스즈키 젠코(鈴木善幸)부터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까지 역대 총리 4명이 그에게 자문을 구했고, 한국에서도 박정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지도자들이 그에게 국가경영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동아시아의 안정은 한반도의 안정에서 시작되고, 그러자면 한·일 양국 관계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이 한·일 관계에 대해 고인이 직접 밝힌 기본 시각이었다. 이런 신념 때문에 그는 양국 정상의 교류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전격 방한했을 때 그는 밀사로 나서 사전 정지작업을 했고, 이듬해 9월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을 성사시켰다.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일왕 사과 문제가 걸림돌로 떠올랐을 때도 일본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막후 조율에 나섰다. 당시 한국 측 협상 주역은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이었다.

 고인과 한국과의 깊은 인연은 95년 발간된 회고록 『기산하(幾山河)』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막역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스스로를 엄격히 삼가면서 높은 견식과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극찬했고, 이병철 전 삼성회장에 대해선 “마음으로부터 경애하는 선배이자 형님이자 교사였다”며 각별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병철 회장의 주선으로 세지마와 인연을 쌓았다.

 그는 기업인으로 성공 신화를 일구었다. 38년 일본 육사를 수석 졸업한 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대본영 참모로 근무하다 패전 후 소련군 포로로 잡혀 11년간이나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이후 귀국해 58년 입사한 회사가 이토추 상사다. 세지마는 기업에 참모조직을 도입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해 조그마한 섬유회사였던 이 회사를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우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같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73년 오일 쇼크를 예측하기도 했다. 도야마(富山)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군 참모와 시베리아 포로 생활을 거쳐 늦깎이 기업인이 된 뒤 정·재계에서 맹활약한 그의 격동적 인생은 야마자키 도요코(山崎豊子)의 『불모지대』에서 주인공 ‘이끼’로 그려져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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