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교육열병 파고든 6천억 학습지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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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학습지 열풍이 불고 있다.
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학습지는 특히 외국어등 조기교육과 영재교육 바람을 탄 유아용 학습지 시장의 확대로 유아로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한 2백여종 이상이 쏟아져 6천억원대 대형시장을이루고 있다.
경제수준 향상과 자녀수 감소라는 시장변화와 조기.평생교육이라는 소비자의 욕구를 파고든 학습지 매출규모가 커지자 대기업 출판사들이 앞을 다투어 수십억원의 교재개발비와 연간 수백억원의 광고비를 퍼부으며 시장을 달궈 학습지는 춘추전국시 대를 맞고 있다. 또 판매방식에 있어서도 단순 배달에서 지도교사가 구독자를 방문하거나 구독자를 공부방으로 불러내는 형태,컴퓨터통신.우편.전화지도등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학습지 열풍은『유아용 학습지 3종을 구독한 경험에 비춰보면 출판사간 경쟁이 교재개발 경쟁으로 이어져 선택에 따라서는 충실한 내용의 학습지 구독이 가능하다고 본다』는 韓모씨(33.여.
D여고 국어교사)의 말처럼 순기능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적팽창에 따른 무분별한 회원확장 잡음과 저질학습지의 난립등으로 소비자 불만이 폭증하는 추세다.
「도대체 어떤 학습지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지 몰라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학습지 시장의 현황과 전망,그리고 문제점을 짚어본다. ◇현황=지역단위 시험문제지로 인식돼온 학습지는 72년 아이템플의 참여로 기업형 학습지 원조를 이룬 뒤 80년 과외금지 조치로 일대 전기를 맞았다.
일.주.월간형태의 학습지가 과외금지 대상에서 제외되자 입시학원의 명성을 학습지에 접목시킨 대형학원들이 학습지 시장에 불을붙였고 신흥출판사들이 속속 가세했다.
특히「학습지로 일어섰다」는 대교.웅진.재능교육등 신흥업체들은외국어 조기교육과 速進교육 붐을 타고 유아와 국민학생을 목표로교재의 고급화.유통의 체계화.판매의 현대화를 추구하면서 시장규모를 급격히 팽창시켰다.
80년대의 전과목 학습지 시대는 90년대 접어들면서 과목별로학습지를 세분시키는 전문학습지 시대로 변모하면서 학부모의 다중구매와 구매대상의 저연령화 현상이 가속화됐다.
전국적인 학습지 공식현황은 집계되지 않고 있으나 광고업계에서는 사단법인 학습자료협회에 가입하고 있는 20여개 회원사를 비롯,지역단위.소그룹규모 업체까지 최소한 전국에 80여개 업체가2백여종의 학습지를 발간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 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장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로 (주)대교의 출판업계 급부상을 들고있다.
대교출판.대교컴퓨터등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규모로 성장한 대교는 75년 동네 공부방 수준이던「종암교실」을 전신으로 하는 선발 학습지 전문 기업.
85년 공문수학 5만회원 모집으로 학습지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대교는 87년 10만회원을 돌파하면서 매출액 62억원을 기록했다.
상품을「공문」에서「눈높이」로 개칭한 대교는▲소비자 욕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교재개발▲지도교사의 방문지도 판매기법▲대대적인 광고공세가 적중,지난해 1백20만회원,1천8백억여원 매출을 기록했고 올 1백50만 회원,2천6백38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는초고속 성장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밖에 대교에 수위를 내주기 직전까지 86년부터「웅진IQ」로당시 유아.초등학습지업계 왕자로 군림했던 출판계의 신데렐라 웅진출판과「재능수학」「구몬수학」으로 자리를 굳힌 재능교육.공문교육연구원등도 올해 연 매출액 최고 1천6백억원을 꿈꾸고 있는 선점 업체들이다.
학습지 시장이 비대해지면서 89년 참고서에 주력하던 동아출판사와 아동도서전문 출판사 계몽사등이 잇따라 초.중등학습지 시장에 진출했으며 기존업체와 후발업체의 경쟁은 시장확장을 부채질해왔다. 웅진출판 李興茂교육문화사업본부장(41)은『공교육제도 아래에서는 자녀능력에 비해 학교교육이 너무 빠르거나 오히려 너무더디다는 불만을 가진 학부모가 상존한다』면서『한국적 교육열과 조기교육.속진교육.평생교육 인식의 확산으로 학습지 시 장의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年비용 10~30만원 ◇종류=학습지는 그 대상에 따라▲유아용▲초.중.고생용▲성인용으로 대별된다.또 그 판매.지도방식에 따라▲배달형▲학습지도형으로 나뉘며 교재내용에 따라서는▲프로그램형▲종합진도형▲시험대비형으로 나뉜다.
유아용으로는「웅진곰돌이」「눈높이친구」「아름아리유치원」「두리두리」등 20여종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중 상당수는 연속구매를노려 유아용 학습지를 초.중등 학습지와 연계하고 있다.
「눈높이 국.영.수」「재능수학」「구몬수학」「용운수학」「과학나라」등이 그 대상을 유아~초.중.고생으로 폭넓게 잡은 프로그램형 학습지류다.
초.중생용으로는「뉴턴」「아름아리52」「재능 국.영어」「웅진IQ」등 전국판매망을 가진 20여종이 있으며 지역단위 일일학습지까지 포함하면 1백50여종의 유아.국민학생용 학습지가 발행되고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고생용으로는「종로회원」「한샘가정학습」「탑클래스」「에이플러스」「홈스터디」등 10여종이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과외공부 방식의 학습지등을 포함하면 최소한 50여종이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격은 유아용이나 초.중.고생용이 큰 차이없이 연12만~30만원대가 주종이며 컴퓨터디스켓이 포함된 일체형등 일부 품목은 48만~60만원대.
성인용으로는「매일 영.일.중국어」「눈높이한자」「재능한자」등 어학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초.중등 학습지 시장에 비하면 아직 미개척분야로 남아있다.
학습지는 가정.우편배달만을 하거나 이를 수거해 채점을 해 돌려주는 단순배달형과 학교진도에 맞춰 문제지를 푸는 종합진도형이주종을 이뤄왔다.
그러나 최근 대교의「눈높이」시리즈나 웅진의「용운수학」등은 학교진도에 관계없이 지도교사가 주1회 구독자를 방문하거나 구독자를 일정 장소로 모이게 해 학습능력과 진도를 분석.지도해주는 프로그램식 학습지도형으로 개발돼 학습지 시장의 주 종으로 올라서고 있다.
◇문제점=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학습교재 구매와 관련된 소비자고발.상담건수는 92년 1만2백40건에서 93년 1만8천1백7건으로 전년대비 76%나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중 90%가량이 계약.해약과 관련된 고발.상담이어서 학습지업체간의 과당경쟁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구매대상이 미성년인 점을 악용해 외판사원이 집주소를 알아낸뒤 구매거절의사를 무시하고 학습지를 강매,2월 소비자보호원을 찾은 끝에 계약을 해제한 柳모양(17)의 경우처럼 지도교사를 판매원으로 이용해 등.하교길 학생을 상대로 한 강매가 빈발하고 있다.
또 구독료를 연회비로 챙긴뒤 배달이 끊기거나 오.탈자등 인쇄불량사례가 늘고 있는가 하면 학부모도 이해하기 힘든 문제출제나외국등 기존업체 것의 베껴내기식 편집등 내용상의 문제점도 새로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을 확대하려는 학습지 업체들이 유아및 국민학교저학년을 상대로 한 구매대상를 지나치게 저연령화하거나 중복구매를 종용하는등 가정교육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형업체인 B사는 구매대상을 학습 비적령기인 만2세까지 낮춰잡고 있으며 만4세이상 용으로 개발된 C사의 상품은 외판원을 통해 만2~3세용으로 선전하고 있다.
***두살바기도 구독 학습지업체 D사 黃모과장(35)은『미취학아동이 3~4종 이상의 학습지를 구독하거나 만2~3세 유아가복수학습지를 구독하는 것은 부모들의 과잉학습욕을 이용한 판매술일뿐 유아들의 지능개발이나 지식습득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솔 직한 견해를 밝혔다.
또 黃씨는『저연령층일수록 학습에 있어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주1회 10분미만의 방문지도 학습지 지도교사에게유.소아 교육을 떠넘기는 부모도 상당수』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학습지 업체는 교재제작으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교육부등 공공기관의 심의.규제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돼 있다.
학습지는 중.대형업체간의 연합체인 학습자료협회가 교재내용만을자율심의하고 있으나 일부 영세업체들은 매출노출을 꺼려 자율심의마저도 기피하고 있다.
이에따라 교육계에서는 학습지 시장비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이상 현재 전무한 학습지 관계법규를 시급히 제정해 정부가 일제정비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權寧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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