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어정쩡한 남북 합작 드라마 ‘사육신’…진정한 합작은 언제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최초의 남북 합작 드라마라고 화제를 모았던 방송 80년 특별기획드라마 ‘사육신’이 작가·연출가·배우 모두 북한 사람 일색이어서 좀 의아했다. 알고 보니 KBS가 제작비와 장비를 대준 일종의 외주드라마였다. 합작이라는 용어도 슬며시 사라지고 남북 최초의 드라마 ‘교류’라는 말로 포장이 바뀌었다. 교류라면 남측의 ‘대조영’ 같은 드라마도 북한에서 방송이 돼야 할 텐데 그런 계획은 아직 없는 듯하다.

 외주 제작 시스템이라면 제작비를 댄 방송사의 입김이 많이 들어갈 텐데 그렇지 않은 까닭이 뭘까. 시청률이 낮은 이유도 아마 그 연장선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성삼문 역을 북측 배우가, 수양 역을 남측 배우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평범한 시청자가 생각하는 합작은 아마도 그런 모습일 것이다.

 드라마 ‘사육신’을 보다가 문득 20세기 말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1999년 겨울 두 번 평양에 간 적이 있다. 남북 합작 공연 ‘민족통일음악회’의 남측 연출가 자격이었다. 당시 연출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생방송으로 하자, 남측과 북측 가수들이 한자리에서 화음을 이루게 하자.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약서에 분명히 사인했지만 북측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생방송 개념이 다르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녹화한 날 방송이 되면 그것도 생방송이라는 얘기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둘러보니 그곳은 평양이었다. 결국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12월 20일 오후 6시에 끝난 공연은 당일 밤 10시50분부터 남측에 방송됐다.

 남북이 ‘같은’ 무대에는 섰지만 ‘같이’ 무대에 섰다고 내세우기는 어려운 일도 벌어졌다. 북측 연출가는 절대로 남북의 솔로가수가 한자리에서 입을 맞출 수는 없다고 버텼다. 음악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출가 맞느냐’는 수모까지 받아가며 계속 몽니를 부렸지만 결국 시간은 다가왔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었고 남측 가수들의 노래가 다 끝난 후에 북측의 공연이 이어졌다. 문패는 ‘통일음악회’였지만 ‘통일은 멀었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과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오프닝과 클로징 무대만이라도 남북의 출연 가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나와 ‘반갑습니다’와 ‘다시 만납시다’를 합창하게 하자고 사정하여 그 뜻은 관철되었다. 북측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양보했다며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생색을 냈다.

 ‘사육신’에 나오는 배우들 모두가 낯선 얼굴인데 단 한 사람 예외가 있다. 이효리가 등장했던 CF에 나왔던 북한 배우 조명애가 솔매 역을 맡은 것이다. 연기력은 미흡하지만 그나마 그녀가 캐스팅된 것이 아마도 KBS가 ‘외주 제작사’에 간절히 요구한 결과물이 아닐까 짐작된다.

 ‘사육신’이 방송되는 동시간대 SBS 드라마스페셜 제목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다. 북한이 완벽한 이웃이 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분명한 건 벽돌 한 장 한 장 빼내다 보면 마침내 담장 없는 이웃이 될 거라는 견고한 믿음이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전 이화여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