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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가치잣대 우리에게 강요마라-높아가는 亞洲의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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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서구식의 사회체제를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부정적인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서구의 민주주의식 원칙들은 도덕적 붕괴와 性의 문란,가족제도의 붕괴,직업윤리 부족으로 인한 경제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93년5월29일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의 라디오방송을 통한 연설내용이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서구의 물질문명이 일정한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그리고 西勢東漸으로 아시아지역을 압도해 온 서구의 산업주의 가치기준을 부정하 려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시아지역은 1인당 국민총생산을 평가기준으로 삼는 서구의 척도에서 낙후지역으로 분류되어 왔다.그러나 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문명을 급속히 흡수해온 반면 서구가 높은 실업률.경기침체 등으로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사이에 높은 경제성장률 을 기록하면서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자신감은 서구의 자유주의에 대한 아시아적 권위주의의 예찬으로 표현되고 있다.
지난 2월11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美日무역마찰 해소를 위한 정상회담 자리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일본총리는 그동안의 통념을 뒤엎고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시장개방 압력을 정면으로 거부했다.호소카와총리의『노』(NO )발언은 일본의 총리가 처음으로 패권국 미국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던졌다.
호소카와총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달 21일 中國 방문중 리펑(李鵬)총리와 만난 자리에서『歐美는 자신들의 가치기준을다른 나라에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는 인권문제가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경우 중국에 대해 최혜국대우(MFN) 연장을 철회할 것이라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의견교환이 있었는데 호소카와총리는 이같은 발언은 미국의 인권외교에 흠집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중국은 인권과 무역을 연계시키려는 미국의 의도에 대해 반발하면서 미국이 최혜국대우를 철회할 경우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었다.경제적 이해관계에 인권을 내세워 사실상 內政을 간섭한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로이드 벤슨美재무장관이『최혜국대우 철회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중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발언,한발짝 물러서 일단락됐다.미국의 경제패권주의가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인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당당하지는 못했지만 그 발단은이미 10여년전으로 소급된다.지난 85년10월9일 리관유(李光耀)싱가포르총리는 젠킨스보호무역법안을 표결하기 위한 미국 상.
하원 합동회의장에서 명연설을 해 큰 감동을 던져주 었다.
李총리는『2차세계대전을 유발했던 30년대의 무역마찰이 되풀이된다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될 것』이라며『서방의 모든 선진국들은 이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책임져야 하며 1차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질책 했다.최근 들어서는 아시아 각국의 歐美에 대한 반격이 더욱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대표적 사례가 英國.말레이시아간의 싸움.
영국 언론들은 지난달 말레이시아의 정치인들이 대규모의 금융부정을 저지르고,뇌물에 익숙해 있으며,정부의 반부패 조직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이에 대한 마하티르총리의 대응은 신속하고도 과감했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을 포함,말레이시아정부가 발주하는 모든 공사입찰에 영국기업체들을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질서 재편 變數 이 사건으로 인해 마하티르총리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마거릿 대처총리 이래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던영국과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급랭했다.총 60억달러에 달하는 말레이시아의 정부발주 공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영국의 대형 기업들은 영 국언론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고,영국의회는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이같은 여러 사례는 아시아 각국의 자기주장이 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그러나 한계는 서구의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아시아의 권위주의 실체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아시아의 나라들은 대부분 서구의 성장척도로 자국의 성공을 설명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또 아시아의 권위주의가 우수한 이상이라면 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권위주의 옹호 론자들이더욱 분명히 대답해야 할 문제는 각국의 정권유지및 장기집권을 위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것이다.
하여튼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경제력이 국력을 대변하는 시대에서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자주적인 경제외교는 21세기를 재편하는 국제질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金祥道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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