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나서겠다”/민자,정국운영방식 전환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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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UR·북핵등 맡겼더니 「일」만 내/꼬리문 실정 당서 현안 적극정리
민자당이 정국운영방식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행정부 독주와 우위의 정국운영이 지금과 같은 난국을 초래했다는 반성과 함께 당이 국정에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행정부가 국민의 요구나 감정과는 동떨어진 정책결정을 하니 자연히 꼬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새정부 출범후 정부주도에 계속 늘려지낸 당의 위상이 오늘의 난국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UR이행계획서 수정·북핵정책 혼선 등 정부의 잇따른 실수에 당이 함께 묻어 곤혹을 치른다는 원망과 함께 이제부터 행정부에 대해 엄한 「시어머니」 노릇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당은 우선 각종 현안에 대한 당차원의 「조기수습」을 통해 국면을 진정시킨뒤 앞으로의 당정관계에서는 모든 사안을 당주도로 꼼꼼하게 챙겨나간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또 사전선거운동에 연루된 관계자들에 대한 처리도 행정부의 눈치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당이 앞장서서 빨리 정리하겠다는 의지다.
그간 종가집 묵은 살림을 며느리에 모두 맡겼더니 「실수연발」에다 안팎 비난으로 집안꼴 말이 아니라는 민자당의 불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은 UR이행계획서의 농산물부문 수정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정부측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 도덕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북핵대응 또한 이제 『전면 재검토』를 정부에 촉구하며 뒷북을 치는 꼴이니 당으로서는 심각한 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새정부들어 토초세 파동에서도 정부의 원안을 당이 정치적 시각으로 걸러주지 않아 엄청난 조세저항을 겪었고 올초 「물가인상」도 정부의 논리를 방관했다가 당만 발등이 찍힌 사례로 보고 있다.
결국 지역구에서 정부실정의 뒷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할 곳은 민자당일 뿐이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가 바탕이 되어 당의 위상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세기 정책위 의장은 4일 『향후 당이 정부에 목소리를 높여 국면을 수습하고 모든 정책현안을 주도적으로 챙겨나가겠다』고 밝혀 당정관계의 변혁을 예고해놓고 있다.
당 정세분석위도 4일 『UR·북핵·사전선거운동 등 각종 현안을 조기수습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며 향후 당정관계를 강력하게 다져나가야 한다』고 지도부에 건의했다.
당은 6월말로 예정됐던 UR 농촌안정대책(농촌구조조정·농특세 활용방안)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야당의 공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고 이를 4월말까지 조기제출토록 이미 정부측에 촉구했다.
당은 UR 농산물분야 수정의 대국민설득 홍보도 정부에 맡기지 않고 『당에서 설득논리를 개발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이세기의장)는 입장이다.
7일에는 대통령 일·중 순방에 동행한 5개 부처장관(외무·상공자원·건설·체신·과기처)을 당사로 불러들여 순방성과의 가시화를 독촉해 나가기로 했다.
최근 『특사교환과 북미 3차 회담을 분리할 수 있다』는 외무부(홍순영차관)의 입장도 도마에 올려 따져 볼 예정이다.
이세기의장은 『장관은 바뀌면 그만이지만 당은 정책에 대해 표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제는 책임만큼 강한 목소리,정치적 감각이 담긴 한수 위의 「주도권」을 행사해 「불이익」을 스스로 막아보자는게 민자당의 입장인 셈이다.
김종필대표도 『당이 반발짝 앞선 정책의 견인력·추진력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협화·단결이 급선무』(4일)라고 당 우위의 요건을 강조하고 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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