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국정원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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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대변인은 2일 "피랍 사태의 중대 고비를 앞두고 석방을 하루라도 앞당기고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을 활용하기 위해 정보 라인의 최고 책임자로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김 원장의 아프간행과 관련해 "청와대 관련 부서(안보정책수석실)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내부에서 신변 보장이 안 된다는 점을 들어 원장이 직접 갈 필요까지 있느냐는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김 원장 스스로 직접 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아프간행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8월 31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탈레반과의 대면 협상에 대해 "국민의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와 국가 위신이라는 가치가 충돌한다"며 "현실적 의미에서 전 세계 대세를 거역했을 때 외교상 부담이 있는 것이지만 내부적으로 토론과 갈등을 겪어 나왔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현지에서 인질 석방을 위해 뛴 것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인 셈이다.

특히 청와대는 인질 석방 과정에서 김 원장의 모습이 방송 화면에 노출된 데 대해서도 "시빗거리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과거의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와 달리 21세기형 정보기관의 새로운 모습으로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2005년 이라크 테러단체에 의해 납치됐다가 5개월 만에 석방된 프랑스 여기자 피랍사건 당시 프랑스 정보기관 대외보안총국(DGSE)의 피에르 브로상 국장이 바그다드에서 직접 협상을 지휘한 뒤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여기자와 함께 특별기 편으로 귀국한 사례도 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는 "그럴 사안이 아니다"며 김 원장 문책론을 차단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김 원장의 내년 총선 출마설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억측이며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김 원장의 처신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데 대해선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카불의 숙소 호텔(세레나호텔)이 현지의 유일한 호텔이라는 공간적 한계 때문에 방송에 노출된 것 같다"며 "우리도 김 원장이 그렇게까지 노출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 원장의 인터뷰 등과 관련해 "현지에서 협상을 직접 지휘한 김 원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질 전원 석방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내자 기쁜 나머지 응한 것 같다"며 "국정원이 사태 해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결과가 좋은 만큼 지나치게 논란을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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