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희망 이야기] 예순개 눈동자에 꿈 '초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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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4시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 마을 노인정 2층 '마을 공부방'.

10여평 규모의 공부방에서 초등학교 4년생 5명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교사는 1㎠와 1㎡의 차이에 대해 칠판에 도형과 등식을 적어가며 자세히 설명한다. 오는 3월 신학기부터 배울 5학년 수학을 미리 배우는 어린이들의 눈망울은 진지하기만 하다.

50분간의 수업을 마치자 선생님은 난롯가에 아이들과 모여앉아 수학이 어렵지 않은지 다정히 묻고 질문도 받는다. 이어 선생님은 기타를 직접 반주하며 '구슬비' 등 동요를 함께 부르며 즐거운 놀이시간도 갖는다.

선생님은 쉴 틈이 없다. 잠시 후 오후 5시부터 중학교 1~2년생 10명을 모아놓고 한시간 동안 수학을 가르친다. 이해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1대1 보충설명도 해준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칸막이 책상 25개가 마련된 공부방이나 최신 컴퓨터 10대와 각종 도서 1천여권이 비치된 컴퓨터실 겸 독서실로 자리를 옮긴다. 학생들은 여기서도 선생님의 자상한 지도를 받으며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다 집으로 돌아간다.

생업도 갖지 않은 채 9년째 무료 공부방을 열어 초등학생과 중학생 30명을 방과 후 가르치는 '사랑의 공부방 선생님' 김정호(金楨鎬.47)씨.

그는 1996년 3월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마을 공부방을 혼자 운영해 왔다.

서울신학대에서 신학을 전공한 金씨는 목회자의 길을 걷는 대신 낮은 곳에서 조용히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이 일에 매진하고 있다. 金씨는 "어릴 적 집안이 가난해 어렵게 공부했기 때문에 배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 같은 이웃사랑 실천에는 가족들이 불평없이 따라주는 게 큰 힘이 된다. 중학교 2년과 초등학교 4년 두 아들은 방과 후 집 대신 공부방으로 나와 친구들과 어울린다.

부인 심도영(沈道永.43)씨는 가장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남편이 버는 돈이라야 경기도에서 자원봉사 보조 인건비로 나오는 월 50만원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沈씨는 5년 전부터 학습지를 배포하며 한달에 1백여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를 벌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간다.

金씨에게 공부를 배우는 학생들은 맞벌이 부부 자녀가 많다. 결손가정 자녀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과외받을 여건이 안 되는 학생도 적지 않다.

그러나 金씨는 도에서 지원하는 연간 4백만원의 운영경비로 다양한 참고서와 학습 재료를 구비하지 못해 아쉬움을 느낀다. 자원봉사 대학생들의 도움도 절실하다. 031-867-2511.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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