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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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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26면

사진=AP 본사특약

‘빈자(貧者)의 성녀(聖女)’ 테레사 수녀는 희생과 봉사의 상징으로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7년 숨진 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98년 인도 콜카타에 사는 말기암 환자가 죽음 직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함으로써 완치됐다고 증언했다. 힌두교도인 여인은 테레사 수녀가 운영했던 ‘사랑의 선교 수사회’ 소속 호스피스를 찾았고, 호스피스 수녀가 테레사 수녀의 사진이 담긴 반합을 복부 암세포 위에 놓자 밝은 빛이 나오면서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기적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공인됐고, 테레사 수녀는 복자(福者·성인이 되기 이전 단계의 공경 대상)로 선포됐다. 2차 기적이 확인되면 정식으로 성인이 된다. 성인 추대를 위한 심사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테레사 수녀 (1910~1997)

그런 테레사 수녀가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토로한 편지와 기록을 남긴 사실이 확인되면서 세계 기독교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주말 수녀가 남긴 기록을 정리한 책 '테레사 수녀: 나의 빛이 되어라(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가 9월 발간될 것이란 사실이 미국 언론에 보도됐다.

수녀는 유언으로 자신이 남긴 모든 기록을 없애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수녀를 시성(諡聖·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심사자료로 삼기 위해 기록의 보존을 명령했다.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자료 수집을 해온 브라이언 콜로디에추크 신부(‘사랑의 선교 수사회’ 소속)가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적 편지와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수녀는 콜카타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자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한 이래 50년간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무신론자들은 이에 대해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임을 확인해주는 증거”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콜로디에추크 신부는 “많은 사람이 테레사 수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어려운 일도 편한 마음에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편지는 고뇌와 상실감, 번민과의 싸움 속에서 하느님과 하나 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고통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같은 성스러움의 증거다. 고통 속에서 그녀는 그리스도를 닮아갔으며, 이는 곧 테레사 수녀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해준다”고 주장했다.

외신 등에 인용된 테레사 수녀의 편지 내용을 정리했다. 괄호 안은 편집자 주.
 
“예수=너는 나의 사랑으로 나의 반려자가 됐다. 너는 나를 위해 인도에 왔다. 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느냐.

테레사=주님,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다른 수녀와 다른 길을 가야 합니까.

예수=나는 진정한 인도의 수녀, 가난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자들 사이에 나의 사랑의 불꽃을 태울 수녀가 필요하다. 나의 영광을 위해 너를 사용하고자 한다. 거절하겠느냐.”

(테레사 수녀가 아일랜드 수녀회 소속으로 인도에서 머물던 1947년 예수 그리스도의 육성으로 사랑의 선교 임무를 직접 부여받았다며 당시 페르디난드 페리에 대주교에게 들려준 ‘주님과의 대화록’. 이 목소리를 들은 이후 테레사 수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나선다. 이전까지 테레사 수녀는 다른 수녀들과 함께 안전한 교회시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했다. 당시 무질서와 가난과 죽음이 뒤섞인 거리로 나서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특별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망치지 않도록. 제 마음은 지금 가혹한 암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제가 이 일에 나선 이후 이 같은 어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53년 3월. 페리에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 테레사 수녀는 콜카타 거리로 나선 직후부터 신의 부재와 이에 따른 공허감을 호소하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봉사와 희생은 계속됐고, 그녀의 활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고통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일부 심리학자와 신학자들은 테레사 수녀의 경우 어떤 성취를 이룰수록 더욱 자신에게 엄격해지는, 특이하고 강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사랑이었던 저는 지금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원하지 않고 버렸습니다. 저는 간구합니다. 그러나 대답은 없습니다. 저의 신앙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 깊은 곳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공허함과 어둠이 있을 뿐입니다. 주여,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저는 믿음을 잃었습니다. 저는 가슴속에 가득한 생각과 말을 내뱉지 못합니다. 대답을 얻지 못하는 수많은 의문들이 제 가슴을 메워 토로할 수조차 없습니다-불경스러울까 두려워. 저를 용서하소서. 엄청난 공허감 때문에 제 상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의 영혼을 찌릅니다. 하느님은 저를 사랑한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공허한 암흑과 냉기가 엄존해 제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부름에 맹종한 저는 진정 실수를 한 것일까요.”

(날짜 미상. 고해성사를 통해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고통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그러자 고해 신부가 수녀에게 심경을 글로 써보라고 권유했다. 신부의 권유에 따라 테레사 수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

“예수는 당신에 대해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에겐 침묵과 공허함만이 가득합니다. 나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를 열고도 듣지 못하고, (기도할 때) 혀는 움직이지만 말하지 못합니다.”

(1979년 9월. 마이클 반 데르 피트 신부에게 보낸 편지. 피트 신부는 그녀의 영적 동반자로 알려졌다. 이로부터 3개월 후 테레사 수녀는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십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우리가 짓는 미소 속에도’라고 말했다. 편지에서 하느님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함을 토로한 수녀가 연설에선 그 존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일부에선 이런 발언을 두고 위선적이었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저는 마치 하느님과 매우 부드럽고 인간적인 사랑에 빠진 것처럼 얘기합니다. 만약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위선’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지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테레사 수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위선으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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