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北·美 관계 정상화 실무회담 제네바서 개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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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07면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제네바에 도착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1일 회담장인 미국 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고 있다. [제네바 로이터=연합뉴스]

“마치 2000년 북·미 해빙무드를 다시 보는 듯하다.” 지난 1월 베를린에서 북한과 미국이 무릎을 맞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양측 움직임을 지켜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2차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이 시작됐다. 북핵 합의와 북·미 수교의 밑그림까지 그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1999년 수차례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 이듬해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연상시킨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들과 만나 “나는 선택을 했다”며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7년 전 클린턴 행정부 말기 미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를 넘어서는 분위기다. 수교 협상 마지막 순간, 미 정권 교체기에 몸을 사리면서 엄청난 기회를 잃은 북한이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학습 효과’를 토대로 북·미 관계 정상화 등에 성공할지 관심사다.

北, 7년 전 날려버린 기회 이번엔 잡을까

2000년과 2007년 닮은꼴

“2000년 말부터 2001년 신년 벽두,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체제로 권력이 이양되던 시기. 클린턴 행정부의 국가 안보 관리들은 부시 행정부 국무장관 및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인 콜린 파월과 콘돌리자 라이스의 집을 찾아다녔다. 대북 정책을 브리핑하기 위해서였다. 파월은 제네바 합의(1994) 등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통해 성과를 낸 정책을 채택하고 싶다고 밝혔다.”(마이클 마자르, ‘평양으로 가는 먼 길’ㆍ포린어페어지)

하지만 이후 부시 행정부는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과 협상파들의 힘겨루기 속에 ‘악의 축’ 북한에 대한 정책 목표를 고립과 정권교체로 잡았다. 양자회담도 극도로 회피했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2기 행정부 들어서 이라크전과 중간선거 패배, 네오콘들의 잇따른 퇴장을 배경으로 급선회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31일 언급처럼 미 지도부의 대북 문제 해결 의지는 아주 강하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수퍼 북한 담당관’(super North Korea desk officer)으로 불릴 정도로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한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한 네오콘들과 달리 그녀는 지난 2000년 ‘포린 어페어’ 기고문에서 “제네바 핵합의가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정권에 뇌물을 바친 것이지만 쉽게 옆으로 밀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북한에 대해선 강력하고 결단력 있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무장관이 된 뒤 보스니아 협상의 주역 크리스토퍼 힐을 기용, 전권을 주며 북핵 협상을 지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북 접근법은 클린턴 시대의 그것과 거의 같다.

1998년 북한은 신포 경수로 공사가 지연되고 북·미 관계 정상화 협상에 진전이 없자 미사일을 발사하며 미국을 협상으로 불러들였다. 99년 5월 찰스 카트먼 미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가 방북하고 11월과 이듬해인 2000년 1월 잇따라 베를린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5월엔 미 국무부 대표단이 금창리 핵의혹 시설을 방문했다. 이어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는 일련의 역사적 외교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7년 뒤인 2007년에도 닮은꼴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강행했다. 몇 차례 숨 고르기 뒤 지난 1월 힐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베를린 회담, 6월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의 방북 등이 이어졌다. 2일 제네바에서 끝나는 회담 결과에 따라 6자 외교장관 회담, 라이스의 방북 등이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당시 해빙무드를 촉진한 남북 정상회담도 다음 달 1, 2일 7년 만에 재개된다(김대중 정부가 임기 중반이었던 반면, 노무현 정부는 임기를 사실상 2개월 남겨뒀다는 차이는 있다).

최근 애용되는 북·미 간 회담 장소도 베를린과 제네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북한 핵능력의 근본적인 차이

외교 의전상 유사성이 있지만 질적으로 2000년과 2007년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00년 해빙무드는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가 일단락됐고, 북한의 미사일 문제만 남겨둔 상황에서 가능했던 분위기란 것이다. 당시 북한 핵 실태는 “핵무기 1개 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은 핵 실험을 강행, 핵무기를 만들 능력과 재료가 충분함을 국제사회에 과시했다. 정교하지 않은 이른바 ‘불량 핵무기’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2003년과 2005년에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최대 46~64㎏의 플루토늄을 더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핵무기 5~12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올 연말까지 이행되길 기대하는 북핵 불능화는 기존 핵무기와 핵물질을 폐기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다”고 말했다. 비핵화가 안 된 상황에서 미국의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은 기대 난망이란 것. 힐 차관보도 29일 라이스 장관의 연내 방북 계획을 일축했다. 북한이 이미 가진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회의도 국제사회에 깔려 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현 부시 행정부는 임기가 17개월이나 남았다. 북한의 결단에 따라 엄청난 진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은 북·미 관계 정상화 교섭 마지막 단계에서 미사일 폐기 대가를 지나치게 높게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었다. 우리 당국자들은 기회만 되면 북한에 “2000년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부시 정권은 북한 핵 해결을 외교적 업적으로 삼고자 하는 분위기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최근 “연내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내년에는 기존의 터부(tabooㆍ금기)를 넘는 빅뱅 수준의 대전환도 가능하다”고 했다. 미국이 활짝 열어 놓은 문을 북한이 제때, 제대로 열고 들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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