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전국 첫 주민소환 투표 앞두고 김황식 하남시장 직무 정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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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하남시의 김황식 시장이 주민들의 뜻에 따라 권한이 정지돼 일을 못 하게 됐다. 주민소환제가 7월에 시행된 뒤 주민에 의해 시장이 업무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은 처음이다.

31일 하남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들이 청구한 김 시장과 시의회 김병대 의장, 임문택 부의장, 유신목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발의하고 9월 20일 투표를 한다고 공고했다.

선관위의 공고와 동시에 김 시장과 세 명의 시의원은 자동으로 일에서 손을 뗐다. 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선관위가 주민소환 투표 공고를 하면 대상자의 직무는 즉시 정지된다.

김 시장 등은 주민들의 투표 결과가 불신임으로 나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장직은 당분간 임승빈 부시장이 대행한다. 그러나 김 시장의 경우 비리나 부정을 저지른 게 아니라 '광역 화장장 유치'라는 정책을 펴다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점에서 논란도 있다.

김 시장은 "광역 화장장을 설치하는 대신 2000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지역개발사업에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남시 주민소환추진위원회(공동대표 유정준.이명국)는 "혐오시설인 화장장 유치는 안 된다"며 김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했다. 추진위는 7월 말 주민 3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김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청구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공직사회 혁신에 필요"=예전에는 선거로 뽑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은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4년 임기를 보장받았다. 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아야만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독선적인 정책 추진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제동을 걸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주민소환제가 시행되면서 주민들이 힘을 합하면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 미국에선 이런 주민소환제가 일반화돼 있다. 2002년 캘리포니아주의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재정적자 급증과 에너지 가격 급등 때문에 주민소환 투표에서 불신임을 받아 물러났다.

인하대 이기우(사회교육학) 교수는 "주민소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결정판"이라며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전횡을 막고 지방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악용이나 부작용 막아야"=문제는 일부 주민이 주민소환제도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자치단체장이 인기행정.선심행정만 펼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현행 주민소환법에는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소속 단체장 230명의 명의로 "주민소환제의 남발과 정략적 이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청구사유를 법에 명시하고, 주민소환 투표 이전에 직무를 정지하는 법 조항은 폐지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하남시 관계자는 "시장이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시장을 쫓아내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누가 시장이 돼도 시 발전을 위해 광역 화장장 유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기(정치행정학) 경상대 교수는 "시민들이 정치적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지역발전을 위해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주민소환제가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하남=정영진 기자

◆주민소환제=선출직 공직자를 주민의 투표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제도.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주민 서명이 필요하다. 특별시.광역시 시장과 도지사를 소환하려면 투표권자의 10% 이상, 지방 시장과 군수.구청장을 소환하려면 15% 이상의 주민이 서명해야 한다.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와 유효투표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들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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