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프간 피랍자 ‘구상권(求償權) 행사’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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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43일 만에 일단락됐다. 그러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그중의 하나가 피랍자나 교회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다. 특히 정부가 이런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자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지출한 비용을 피랍자 등이 갚아야 한다는 주장이 분출되고 있다. 위험한 지역이니 주의하라는 정부의 경고를 무시한 이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행동이 그 선의와 관계없이 경솔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점에 대해 교회는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안은 국가의 의무와 개인의 책임이라는 갈등적 문제를 야기한다. 범법이 아닌 ‘경솔한 행위’로 국가에 피해를 입혔다고 일일이 구상권을 당한다면 그런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한 시민이 위험경고 지역에 등산을 갔다가 사고를 당해 구조헬기가 떴다면 구조비용을 청구할 것인가. 국민은 납세 등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고, 국가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것이 ‘근대 민주국가’의 본질이다. 구상권 행사는 일본 정부가 2004년 이라크 인질에게 귀국 경비를 청구한 예가 고작이다.

따라서 구상권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돼야 하며 그 범위도 제한적이어야 한다. ‘집이나 교회를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는 일부 네티즌의 주장은 수용될 수 없다. 현지에 급파된 공무원들의 출장 비용을 청구한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국민 보호’가 국가의 최우선적 임무라는 명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샘물교회 측은 석방자들의 귀국 항공료와 희생자 2명의 운구비를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여기에다 의료헬기 사용료 등을 추가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구상권 행사보다는 자발적 부담으로 매듭을 짓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이번 사태로 국민이 절망감과 무력감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구상권 문제를 놓고 편을 나눠 갑론을박을 벌인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