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군·구 의회 의원 '연봉 올리기' 담합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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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국 시.군.구 의회 의원들이 뭉쳐 연봉(의정비)을 대폭 올리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특별.광역시의 구의원이나 지방 시.군의원의 연봉은 평균 2776만원이고, 지역에 따라 최저 1920만원(충북 증평군)에서 최고 3804만원(서울 서대문구)까지 차이가 있다. 그런데 내년에는 배 이상 많은 최고 7100만원까지 받겠다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지방의원들이 스스로 연봉을 확정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지방의원들이 담합해 '밥그릇'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했다. 지방의회 의원은 2005년까지는 기본적인 의정활동비만 받는 명예직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의정활동비 외에 월정수당까지 받는 유급직으로 바뀌었다. 시민단체들은 유급제를 시행한 지 1년 만에 연봉을 대폭 올리겠다는 지방의원들의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정비 인상 '담합' 의혹=전국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는 이달 중순 전국 15개 시.도별 협의회 앞으로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비 현실화 필요성'이란 문서를 보냈다. '대외비'로 분류된 이 문서는 시.군.구 의원의 연봉을 해당 지역 부단체장급으로 올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인구 15만 명 미만 지역은 3776만~6497만원, 인구 15만 명 이상은 4770만~7100만원으로 연봉을 올려야 한다며 구체적 금액까지 제시했다.

이에 앞서 서울 강남구의회는 지역 의원들의 연봉을 현재 2720만원에서 6096만원으로 올리기로 잠정 결정했다. 인상률은 124%나 된다. 부산 북구의회도 연봉을 2700만원에서 5000만~6000만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대구.대전.경북.광주 등 다른 지역도 대부분 의정비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시 북구의회 김상용 의장은 "선거 구민이 크게 늘면서 정책수요가 폭증하는 데도 의정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불투명한' 의정비 심의=문제는 의정비 심의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지방의원들의 의정비를 제대로 책정하는지 검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정비를 왜 올려야 하는지 투명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서 연봉을 대폭 올리겠다고 나서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본지는 의원 연봉을 대폭 올리려는 서울 강남구가 의정비를 제대로 심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의정비 심의위원'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두 차례나 냈다. 하지만 강남구는 이를 거부했다. 현행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위탁 받은 일을 하는 개인의 이름과 직업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연세대 하연섭(행정학) 교수는 "의정비를 올리려면 심의위원의 명단과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는 "31일 전국 시.도 기획관리실장 회의를 열어 심의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도록 주문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또 "지방의회가 요구하는 인상률이 구체적 근거 없이 산정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시행령에는 의정비 결정 때 ▶주민 소득 수준 ▶공무원 임금인상률 ▶물가상승률 ▶의정활동 실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 교수는 "공무원 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은 매년 한 자릿수이고, 주민 소득수준이나 의정활동 실적도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100%나 의정비를 올리겠다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도 30일 성명서를 내고 "지방의회는 의정비 심의보다 의정활동에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주정완 기자, 부산=강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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