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군.구 의회 의원들이 뭉쳐 연봉(의정비)을 대폭 올리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특별.광역시의 구의원이나 지방 시.군의원의 연봉은 평균 2776만원이고, 지역에 따라 최저 1920만원(충북 증평군)에서 최고 3804만원(서울 서대문구)까지 차이가 있다. 그런데 내년에는 배 이상 많은 최고 7100만원까지 받겠다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지방의원들이 스스로 연봉을 확정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지방의원들이 담합해 '밥그릇'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했다. 지방의회 의원은 2005년까지는 기본적인 의정활동비만 받는 명예직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의정활동비 외에 월정수당까지 받는 유급직으로 바뀌었다. 시민단체들은 유급제를 시행한 지 1년 만에 연봉을 대폭 올리겠다는 지방의원들의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정비 인상 '담합' 의혹=전국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는 이달 중순 전국 15개 시.도별 협의회 앞으로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비 현실화 필요성'이란 문서를 보냈다. '대외비'로 분류된 이 문서는 시.군.구 의원의 연봉을 해당 지역 부단체장급으로 올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인구 15만 명 미만 지역은 3776만~6497만원, 인구 15만 명 이상은 4770만~7100만원으로 연봉을 올려야 한다며 구체적 금액까지 제시했다.
이에 앞서 서울 강남구의회는 지역 의원들의 연봉을 현재 2720만원에서 6096만원으로 올리기로 잠정 결정했다. 인상률은 124%나 된다. 부산 북구의회도 연봉을 2700만원에서 5000만~6000만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대구.대전.경북.광주 등 다른 지역도 대부분 의정비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광주시 북구의회 김상용 의장은 "선거 구민이 크게 늘면서 정책수요가 폭증하는 데도 의정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불투명한' 의정비 심의=문제는 의정비 심의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지방의원들의 의정비를 제대로 책정하는지 검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의정비를 왜 올려야 하는지 투명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서 연봉을 대폭 올리겠다고 나서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본지는 의원 연봉을 대폭 올리려는 서울 강남구가 의정비를 제대로 심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의정비 심의위원'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두 차례나 냈다. 하지만 강남구는 이를 거부했다. 현행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위탁 받은 일을 하는 개인의 이름과 직업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연세대 하연섭(행정학) 교수는 "의정비를 올리려면 심의위원의 명단과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는 "31일 전국 시.도 기획관리실장 회의를 열어 심의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도록 주문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또 "지방의회가 요구하는 인상률이 구체적 근거 없이 산정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시행령에는 의정비 결정 때 ▶주민 소득 수준 ▶공무원 임금인상률 ▶물가상승률 ▶의정활동 실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 교수는 "공무원 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은 매년 한 자릿수이고, 주민 소득수준이나 의정활동 실적도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100%나 의정비를 올리겠다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도 30일 성명서를 내고 "지방의회는 의정비 심의보다 의정활동에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주정완 기자, 부산=강진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