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 준 김상진, 받은 정상곤, 주선한 정윤재 '미스터리 행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 주변의 파워 엘리트 가운데 부산을 중심으로 한 PK(부산·경남) 출신이 많다. 1억원 뇌물 사건의 당사자인 건설업자와 국세청 고위 간부의 만남을 주선해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386 부산 인맥이다. 문제의 국세청 간부가 구속된 8월 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左)이 박승주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정당시 의전비서관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뒤 빨간색 화살표). 정 비서관은 이튿날인 10일자로 사표가 수리됐다. [중앙포토]

정상곤(53.구속) 국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에게 현금 1억원을 뇌물로 건넨 부산 지역 건설업자 김상진(41)씨가 부산지방국세청의 조직적 비호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씨는 부산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는 물론 비리 제보자의 신원까지 넘겨받았다는 게 부산지검의 수사 결과다. 세무 조사 라인에 있었던 이모 국장은 지난해 12월 퇴직한 뒤 김씨의 회사에 고문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김씨의 탈세 비리는 지난해 7월 제보자 A씨의 폭로로 알려졌다. A씨는 인터넷을 통해 김씨가 자신이 소유한 한림토건과 주성건설의 탈세를 주도했다는 비리를 신고했다. 김씨는 자신의 계열사를 통해 가격을 부풀려 부동산 매매를 하는 등 아파트 개발 사업을 위해 사업을 확장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제보 내용을 근거로 김씨가 실제 사주인 네 개 기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김씨는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당시 국무총리실 민정비서관)을 찾았다. 수년간 골프를 함께 칠 정도로 친분이 있던 정 전 비서관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김씨와 정 국장의 전화 통화를 주선했고, 김씨는 전화 통화 뒤 특별 대우를 받기 시작한다.

김씨의 비리를 수사한 부산지검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8월 부산지방국세청을 찾아가 당시 정상곤 청장을 접견실에서 만나 "세무조사를 선처해 달라"고 청탁했다. 정 국장은 김씨가 '2006년 한림토건과 주성건설에 부과된 추징금 50억원을 줄여 달라'고 하자 "세금을 깎아 줄 수 없지만, 나중에 회사를 폐업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일러 주었다. 김씨는 정 국장이 알려준 대로 올 3월 두 회사를 폐업하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세금을 체납한 기업이 계속 사업을 하려면 사업에서 이익이 날 때마다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체납 기업이 폐업할 경우엔 해당 기업과 대주주에 대해 압류를 통해 세금을 추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산이 없으면 압류를 할 수 없어 세금을 낼 수도 없게 된다. 김씨의 경우처럼 대주주에 대한 세금 추징도 대주주가 재산을 본인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해 놓으면 추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정 국장에게 현금 1억원의 뇌물을 준 시점을 전후해 부산지방국세청의 직원으로부터 제보자(휘슬 블로어)의 신원까지 넘겨받았다. '뒤탈'을 없앨 수 있는 정보까지 제공받은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이 제보자에게 5000만원을 제시하며 입막음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검찰에서 "세무조사와 관련된 부분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취지로 돈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김씨는 1억원의 뇌물을 주고 추징당할 세금 50억원을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국세기본법은 '국세의 부과 또는 징수를 목적으로 업무상 취득한 자료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세무 공무원으로서 중대한 범법 행위를 한 것이다.

또 제보자는 세무조사가 유야무야되면서 세금이 걷히지 않는 바람에 최고 1억원까지로 정해진 포상금을 받지 못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 직원을 수사하지는 않고 비위 사실을 기관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형사 처벌할 요건이 되지 않아 국세청의 징계를 받도록 통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승현 기자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자신이 속한 조직의 불법이나 부정거래에 관한 정보를 신고하는 '내부고발자'를 말한다. 원래 의미는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 미국.영국에는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제정돼 있고, 한국도 부패방지법(2002년 1월부터 시행)에 공공기관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