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주변의 파워 엘리트 가운데 부산을 중심으로 한 PK(부산·경남) 출신이 많다. 1억원 뇌물 사건의 당사자인 건설업자와 국세청 고위 간부의 만남을 주선해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386 부산 인맥이다. 문제의 국세청 간부가 구속된 8월 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左)이 박승주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정당시 의전비서관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뒤 빨간색 화살표). 정 비서관은 이튿날인 10일자로 사표가 수리됐다. [중앙포토]
김씨의 탈세 비리는 지난해 7월 제보자 A씨의 폭로로 알려졌다. A씨는 인터넷을 통해 김씨가 자신이 소유한 한림토건과 주성건설의 탈세를 주도했다는 비리를 신고했다. 김씨는 자신의 계열사를 통해 가격을 부풀려 부동산 매매를 하는 등 아파트 개발 사업을 위해 사업을 확장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제보 내용을 근거로 김씨가 실제 사주인 네 개 기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김씨는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당시 국무총리실 민정비서관)을 찾았다. 수년간 골프를 함께 칠 정도로 친분이 있던 정 전 비서관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김씨와 정 국장의 전화 통화를 주선했고, 김씨는 전화 통화 뒤 특별 대우를 받기 시작한다.
김씨의 비리를 수사한 부산지검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8월 부산지방국세청을 찾아가 당시 정상곤 청장을 접견실에서 만나 "세무조사를 선처해 달라"고 청탁했다. 정 국장은 김씨가 '2006년 한림토건과 주성건설에 부과된 추징금 50억원을 줄여 달라'고 하자 "세금을 깎아 줄 수 없지만, 나중에 회사를 폐업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일러 주었다. 김씨는 정 국장이 알려준 대로 올 3월 두 회사를 폐업하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세금을 체납한 기업이 계속 사업을 하려면 사업에서 이익이 날 때마다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체납 기업이 폐업할 경우엔 해당 기업과 대주주에 대해 압류를 통해 세금을 추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산이 없으면 압류를 할 수 없어 세금을 낼 수도 없게 된다. 김씨의 경우처럼 대주주에 대한 세금 추징도 대주주가 재산을 본인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해 놓으면 추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정 국장에게 현금 1억원의 뇌물을 준 시점을 전후해 부산지방국세청의 직원으로부터 제보자(휘슬 블로어)의 신원까지 넘겨받았다. '뒤탈'을 없앨 수 있는 정보까지 제공받은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이 제보자에게 5000만원을 제시하며 입막음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검찰에서 "세무조사와 관련된 부분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취지로 돈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김씨는 1억원의 뇌물을 주고 추징당할 세금 50억원을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국세기본법은 '국세의 부과 또는 징수를 목적으로 업무상 취득한 자료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세무 공무원으로서 중대한 범법 행위를 한 것이다.
또 제보자는 세무조사가 유야무야되면서 세금이 걷히지 않는 바람에 최고 1억원까지로 정해진 포상금을 받지 못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 직원을 수사하지는 않고 비위 사실을 기관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형사 처벌할 요건이 되지 않아 국세청의 징계를 받도록 통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승현 기자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자신이 속한 조직의 불법이나 부정거래에 관한 정보를 신고하는 '내부고발자'를 말한다. 원래 의미는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 미국.영국에는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제정돼 있고, 한국도 부패방지법(2002년 1월부터 시행)에 공공기관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