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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종 사업 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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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내 대기업들의 최대 관심사는 앞으로 먹고살 거리인 ‘신수종 사업’을 찾는 일이다. 주요 기업은 현재 신수종 사업 발굴 전담팀을 운영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부분 기업의 사업 구조가 한두 개의 주력 업종에 의존하는 천수답 체질인 데다, 중국 등 개도국의 급속한 발전으로 경쟁력과 수익성이 약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외환위기 이후 안정성 위주 경영의 결과로 내부 자금 여력이 확대된 점도 열기를 더해 준다. 문제는 과잉 경쟁과 중복 투자가 초래될 우려가 높은 점이다. 새로운 수익원을 얻으려다 자칫 기존 사업까지 경영 위기에 빠질 위험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이 신수종 사업을 차별적으로 개발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기반 강화, 창조적 기업문화, 조직적인 실행 리더십의 발현이라는 신사업 전략의 삼박자를 맞춰야 한다. 우선 신수종 사업에 뛰어들기에 앞서 현재 경쟁력을 갖춘 성장 주도 사업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막대한 투자비와 장기간이 소요되는 신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확실한 수익원(cash cow)을 확보해야 한다. 새 사업 구상 역시 기존 사업을 바탕으로 강구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이른바 ‘업의 확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본 최대 택배업체인 야마토운수는 단순한 물품 배송업을 기반으로 유통·가사대행·금융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둘째는 경영환경 변화를 앞서 읽고 주도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창조적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와 지식기반 경제가 심화되고 있는 21세기는 ‘승자 독식의 시대’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 차별화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신수종 사업의 성패는 결국 제품의 기능뿐만 아니라 디자인·마케팅 같은 부가가치 창출 전 단계별 차별화의 실현 여부로 판가름된다. 기업 내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권위주의적 기업 문화를 해소하는 일은 기업의 창조성을 제고하는 기본 조건이다. 이에 더해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획득하고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폐기학습(unlearning) 활동도 활성화해야 한다. 금세기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인정받는 도요타의 경영진들이 ‘타도 도요타’를 외치는 것은 과거 성공 방식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몸부림이다.

신수종 사업의 꿈은 아무리 가능성이 크다 해도 조직의 실행력이 없으면 현실화될 수 없다.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창업자의 결단성 있는 추진력이 사라진 뒤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개인의 실행력에만 의존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GE가 끊임없이 신사업을 키우며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한 근본 비결은 조직적인 실행 리더십을 육성해 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크로톤빌 연수원이라는 세계적인 기업 교육기관을 통해 신사업과 실행의 당위성을 모든 임직원이 공유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실행력을 증진해 왔다. 다시 말해 실행력 있는 기업 리더를 양성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해 온 것이다.

기업들의 신수종 사업을 일으키려는 노력이 보다 더 큰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부도 이에 힘을 보태 줘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를 획기적으로 철폐해 ‘세계에서 가장 쾌적한 사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에 더해 보다 직접적으로 정부 조달 확대, 구매 지원금 지급, 정부 보증 등으로 초기 시장 여건을 적극 조성해 줘야 한다. 특정 산업과 품목으로 투자가 몰려 과잉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래 산업 전망과 투자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일도 정부의 주요한 역할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