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요리,저런얘기] 김빠진 맥주 기막힌 재활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맥주 삼겹살 샤브샤브

 몇 년 전 여름,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동해로 1박2일짜리 짧은 피서를 떠났습니다. 신입생 첫 MT부터 술로 경비를 탕진해 인근 참외 하우스에서 일당을 벌어 돌아왔을 정도로 술과 친한(?) 동아리랍니다. 그때도 역시 소주와 맥주를 박스째 챙기는 등 술 사랑 동아리의 면목을 과시했죠.

 시원하고 맑은 바닷물에서 노는 것도 잠시. “젊은 혈기에 배고픔은 최고의 비상사태”라며 민박집으로 달려가 삼겹살을 구워 밤새 병뚜껑을 땄습니다.

 다음날 겨우 눈을 뜨니 방 한쪽 구석에 빼곡히 줄지어 선 술병들이 지난밤 우리의 역사를 말해 주더군요.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소주에 비해 맥주는 이 병 저 병에 꽤 많이 남아 있었답니다. 남은 맥주를 싱크대에 버리려는 순간, 술 사랑이 더욱 각별했던 ‘주사’군이 몸을 날려 병을 가로챘습니다. “피 같은 술을 왜 버려!” 그러고는 큰 코펠에 남은 맥주를 모아 붓고 가스레인지 불을 켰습니다. 맥주가 팔팔 끓기 시작하자 그 속에 어제 먹다 남은 삼겹살을 넣더군요. 잠시 뒤 잘 익은 삼겹살을 꺼내 쌈장에 콕 찍어 입 안에 쏘옥. 그런 뒤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오물거리며 미소를 띠었습니다. ‘뭐하는 짓인가’하며 지켜보던 우리도 그의 행복한 표정을 보곤 슬그머니 젓가락을 들었습니다. “오우~!” 맥주에 담가 기름기 쏙 빠진 삼겹살의 담백한 맛. 여기저기 감탄사가 튀어나왔습니다. ‘맥주 삼겹살 샤브샤브’는 이렇게 주사군에 의해 탄생한 겁니다.

 우리의 주사군, 10월에 결혼합니다. 집들이 때 우리에게 처음 맛보여 준 맥주 삼겹살 샤브샤브를 준비한다하네요. 벌써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김희정(31·서울시 중구 장충동)

■재료(4인분 기준)=삼겹살 1.2kg, 페트병(1.6ℓ) 맥주 1병, 상추·깻잎·미나리·양배추·양파 등 각종 채소, 간장 소스(간장 3큰술, 마늘 1큰술, 참기름 1큰술, 식초 1.5큰술, 설탕 1.5큰술), 쌈장 적당량.

■만드는 법=맥주를 냄비에 붓고 팔팔 끓인 후, 삼겹살을 넣고 익힌다. 양배추·양파·미나리 등 다른 야채와 같이 데쳐 먹으면 더욱 맛있다. 김이 빠진 맥주를 사용해도 무방. 맥주 맛에 따라 샤브샤브 맛이 달라지므로 평소에 선호하는 맥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다음 주제는
가을 음식에 얽힌 사연

 중앙일보 week&과 청정원 국선생(鮮生)이 공동으로 매주 ‘이런 요리, 저런 얘기’의 사연을 찾습니다. 다음 주 주제는 ‘가을 음식에 얽힌 사연’입니다. 요리와 얽힌 에피소드를 대상 홈페이지(daesang.co.kr)에 올려 주세요. 맛있는 요리나 사연을 선정해 가정 요리 전문가인 최경숙 선생님 아카데미 5회 수강권(40만원 상당)과 청정원 밑국물인 국선생(鮮生)과 맛간장 소스(10만원 상당)를 선물로 드립니다. 수상작은 매주 week&에 실립니다. 02-539-8777.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