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선작오십가자필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기 4국 하이라이트8>
○ . 이창호 9단(왕 위) ● . 윤준상 6단(도전자)

장면도(149~170)=어떤 수가 이 판의 패착인가. 일류 프로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으나 패착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바둑은 금방 일어난 일일 뿐 아니라 판 위에 모든 증거가 기록돼 있는데도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진상을 정확히 밝히기 쉽지 않다. 관점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능력으로 파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이 좁은 판 위에 존재하는 탓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의 흔적과 싸우는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참 놀라운 학문이다. 시간과 공간 속으로 흩어진 조각을 다시 찾아 짜 맞춰 나간다는 점에서는 수사나 검증도 마찬가지다.

국후 윤준상 6단은 161로 이은 수를 지목하며 "이 수가 마지막 패착 같다"고 말했다. 한 집 반 패배를 감안할 때 이처럼 고분고분 잇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어딘가 다른 큰 곳을 둬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동료 프로들에 의해 곧 부정된다. 가령 흑이 161로 잇는 대신 '참고도' 흑 1로 빠진다면(또는 A로 몰거나 다른 큰 곳을 둔다면) 백은 무조건 2로 따낸다. 팻감은 아무래도 백이 많기에 흑은 즉각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는 것이다.

진짜 패인은 윤준상 6단의 '마음'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2 대 1로 유리한 상황에서 맞이한 제4국. 이 판만 이기면 왕위를 따낸다는 긴장감이 몸을 굳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초반에 너무 판이 잘 풀린 것도 패인의 하나로 꼽힌다. 흑은 때 이르게 우변 일대에 50집 가까운 실리를 챙겼으나 결국 선작오십가자필패(先作五十家者必敗)라는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