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지엔텍홀딩스…먼지 없는 세상에 끝없이 도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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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12월 어느 날, 외국 바이어와 함께 헬기를 타고 경북 포항을 가던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회장은 한껏 꿈에 부풀었다. 포항 하늘 아래 펼쳐진 웅대한 제철소 전경을 외국 손님에게 보여 주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박 회장의 꿈은 제철소 하늘을 덮은 시커먼 연기 때문에 산산이 부서졌다. 창피해 ‘저곳이 우리 제철소’라는 말도 못하고 내린 박 회장은 특명을 내렸다. “제철소 하늘을 깨끗하게 하라.”

 환경정화 업체인 공영엔지니어링(현 지엔텍홀딩스)이 날개를 단 것은 이때였다. 불똥이 떨어진 포철 담당자는 부랴부랴 대기환경 정화 전문 업체를 찾았다. 때마침 공영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84년 1월 한 신문에 나온 집진기 ‘마이크로 펄스 에어백 필터’ 기사를 보고 이 기계를 개발한 회사를 수소문한 것이다. 이 집진기는 당시 지엔텍홀딩스의 정봉규(60·사진) 회장이 일본에서 분체공학을 전공한 정동백 박사를 기술고문으로 영입해 국내 최초로 생산에 성공했다. 먼지를 모은 뒤 필터에 고압의 바람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집진 효율을 99.9%까지 높였다. 당시로선 첨단 제품이었다. 지엔텍은 포철과 계약해 국내 굴지의 집진기 업체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직원 수 500여 명에 올해 매출 700억원대가 예상되는 중견그룹 지엔텍의 전신은 ㈜공영정화다. 회사는 이후 공영엔지니어링·지엔텍·지엔텍홀딩스로 사명을 바꿨다.

 정 회장은 77년 부친한테서 빌린 창업자금 300만원으로 서울 청계천에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국내 환경 사업은 불모지였다. 고도성장이 최우선인 개발 연대라 정부나 업계 모두 환경문제는 뒷전이었다. 자금과 기술· 판로 모두 척박한 상황에서 기술만이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이크로 펄스 에어백 필터’를 개발한 것은 벼랑 끝 생존 전략이었다. 이 기술 덕분에 80년 인천 대성목재와 한일시멘트에 집진기 납품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턱도 없었다. 창업 자금은 바닥나 가고 가족들은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포철의 ‘러브콜’이 온 것이다.

 “자체 기술력이 없었으면 그런 기적이 오지 않았을 겁니다. 비행기 노선도 없던 그때 계약을 따내려고 서울과 포항을 승용차로 백 번도 넘게 오갔어요. 결국 기술 경쟁력을 높이 사 계약이 성사됐죠.”

 90년엔 포스코 내 모든 정화 시설의 유지·보수를 맡게 됐다. 포스코 일만 전담하는 ㈜공영이란 회사를 별도로 세웠다. 2001년 공영은 지엔텍으로 상호를 바꾸고 이어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2004년엔 포스코 이외의 사업을 하던 공영엔지니어링도 흡수 합병했다.

 회사는 98년에는 ‘마이크로 펄스 에어백 필터’보다 성능이 개선된 ‘VIP(Vertical Integral Purse) 집진기’를 개발해 미국·일본·독일·중국 등지에서 국제 특허를 받았다.

 “VIP는 집진 효율 99.9999%의 세계 최초 순환 여과 방식 집진기입니다. 50년대 미국이 개발해 40년 넘게 국제적으로 통용된 역순환식 집진 방식을 순환 방식으로 바꾼 획기적 제품이죠.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2003년에는 ‘전기 집진기’의 국내특허 등록, 2005년에는 탈질용 촉매 ‘백 하우스’(Bag House) 개발 등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대기환경 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2월에는 이종금속 용접봉 제조업체인 인터코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등 사업 다각화도 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지분 인수에 따른 평가손실로 지난해 회사의 당기순이익이 전년도 46억원에서 13억원으로 줄기도 했다.

 이 회사의 올해 반기 매출은 232억원. 지난해에 비해 30%가량 줄었다. 포스코의 포항 제강 공장에 설치하려던 91억원 규모의 집진기 설비 계약이 포스코 내부 사정으로 연기된 때문이다. 포스코와 독점 계약을 하다 보니 포스코 일감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는 폐단이 노출됐다. 이 때문에 회사는 자생력을 키우려는 다양한 사업을 모색한다. 일본·대만의 철강회사와 집진기 설비 수출계약을 추진 중이다. 6월에는 자원 개발을 하는 지엔텍 리소스를 설립했다.

 해외 진출도 노린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준 것은 카자흐스탄 유전 인수에 따른 자문 수수료 등으로 지출이 꽤 나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투자가 결실을 거둘 경우 내년 상반기에 해외 매출이 50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한다.

박미숙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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