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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유산에서 민족이란 말 지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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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국문학사는 문학사의 객관적 실체를 찾아내고자 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민족의 순수와 우월을 입증하기 위한 서술입니다.”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48·사진) 교수가 4종의 저서를 동시에 펴내며 한 말이다. 최근 소명출판사에서 나온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 『안쪽과 바깥쪽』 『농암잡지평석』등은 그의 지난 16년간 연구의 산물이다.

저서들을 관통하는 그의 화두는 책 제목이기도 한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그는 국문학사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조선시대 한문 작품들이 국문학사에 편입되는 과정을 통해 재조명했다. 한문학이 ‘특정한 전제’ 아래 국문학으로 취사선택되는 방식이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특정한 전제란 한문으로 쓰였지만 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면서 근대화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는 “픽션에 가까운 국문학사를 만들어 놓고 암기를 강요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알려진 연암 박지원에 대한 기존의 연구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강 교수의 새로운 해석은 시작됐다고 한다.

“연암에 대한 기존 연구는 개인의 돌출적 천재성을 부각시키며 작품에서 근대를 향한 맹아적 성격을 찾아내는 식이었죠. 저는 뭔가 연암에게 영향을 준 동시대적 맥락이 있을 거라는 의문을 품었죠. 동시대의 중국 문학을 탐색한 결과 공안파(公安派·작가의 개성 강조)와 양명학(주자학을 비판한 철학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연암 뿐 아니라 이덕무·이용휴·이옥 등 18세기 조선의 문인들도 공안파의 영향을 받았어요.”

연암과 공안파의 관계 등에 눈을 돌리지 못했던 이유는 국문학사의 대전제에 도전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제로 작용한 ‘근대를 향한 자생적 루트 찾기’는 식민지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었기에 시대적 당위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는 조선 후기에서 자본주의 근대화의 맹아를 찾으려는 역사학계의 노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국문학은 민족주의를 성립시키기 위한 도구적 존재였죠. 이제 과거 문학 유산에 대한 연구에서 민족이란 주어를 지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민족’ 대신 ‘인간’이란 주어를 설정해보자고 그는 제안했다. 그래야만 과거의 문학에 대한 연구의 자유와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박사 학위 주제는 ‘여항(閭巷)문학’이었다. 여항문학이란 조선 후기 중인과 서리 등이 생산한 한문학을 가리킨다. 그는 양반이 아닌 중간 계급의 문학에서 진보적 성격을 찾아보려고 했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서구 근대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당위적 강박증이 그에게도 있었던 것.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어느날 ‘잘못 출제된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근대와 민족주의’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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