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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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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 안 간다. 무서워서 못 가.”

황정일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가 식중독 치료 도중 숨진 사건이 터진 직후 서울의 지인이 전화로 통보한 내용이다. 이해할 만하다. 고위 외교관이 링거를 맞다 10분 만에 사망한 사건은 충격임에 분명하다. 지병에 잘못된 처방이 겹쳐 빚어진 돌연사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살아남기 10계명’ 같은 게 교민들 사이에서 회자할까.

분명 중국은 살기 힘든 곳이다. 병원·상품·음식·물은 물론 공기조차 믿기 어렵다. 돈을 주고받을 때도 늘 살펴야 한다. 언제 위폐가 끼어들지 모른다. 택시 탈 때도 방심은 금물이다. 한눈파는 사이 기사가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 주점에서 파는 술의 태반은 가짜려니 여기고 마셔야 한다.

한데 얘기를 좀 바꿔보자. 지금까지 유인 우주선을 띄운 나라는 딱 셋이다. 옛 소련이 처음이고, 그 다음이 미국, 세 번째가 중국이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도 중국이 다섯 번째다. 위성 개수로는 세계 3위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1위, 미국에 대해선 일본에 이어 2위의 채권국이다. 그리고 당당한 핵 보유국이다.

또 있다. 매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전 세계 다국적기업들이 모여 경제를 토론하는 장소다. 올해부터는 ‘하계 다보스 포럼’이 생겼다. 기존 다국적기업들이 신생 다국적기업들을 초대하는 자리다. 개최국은 중국으로 못 박았다. 올해 9월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내년엔 톈진(天津)에서 열린다. 매년 한 차례씩 미국 경제 사령탑들이 총출동하는 유일한 자리가 있다. 중·미(中·美) 경제전략대화다.

이쯤 되면 중국의 이미지는 ‘살기 어려운 후진국’과 ‘미국에 맞설 만한 강대국’이 오버랩된다. 어느 쪽이 맞을까.

둘 다 맞는 얘기다. 중국은 강대국이면서 후진국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외친 지 내년이면 꼭 30년이다. 그 사이 똘똘 뭉쳐 국가적 업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인권·제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소홀했다. 국가적 사업이 너무 힘겨웠고, 신경 쓸 국민도 너무 많았던 탓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은 3년 전부터 ‘국가 재건축’에 들어갔다. 나라의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이다.

우선 인권에 주목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국회에 해당) 상무위원회는 6월 24일 제28차 회의를 열고 변호사의 면책 특권을 규정한 변호사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변호사의 개념도 단순 ‘법률업무 대행인’에서 ‘법률의 정확한 집행과 사회적 공평 및 정의를 수호하는 법률인’으로 수정했다. 의뢰인을 접견할 때 도청당하지 않을 권리도 부여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신 중국 건국 이후 이 법안이 나오기까지 무려 58년이 걸렸다.

공안부는 4월 ‘문명(文明)조례’를 발표했다. 시민이 듣기 좋아하는 말 10가지, 듣기 싫어하는 말 10가지를 예시하면서 ‘봉사 경찰’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정기적인 감찰은 물론 시민불만 접수제도도 마련했다. 공무원 사회에 대한 제도적 쇄신안도 나왔다. 모든 경비는 신용카드로 지출하게 했으며, 직급별 판공비도 정했다. 시민의 전화 12345를 신설해 24시간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부 관리의 비리를 고발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했다. 최근 2~3년간 쏟아진, 이와 유사한 조치는 수십 건이나 된다.

물론 충분한 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겉이 아닌 속에서, 위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달라지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이 ‘파워 차이나를 건설하기 위한 제2의 혁명’으로 부를 정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이 대목이다. ‘후진국 중국’만 바라보다간 자칫 ‘용중(用中·중국 이용하기)’의 대계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세근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