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북핵, 남북 정상회담선 못 풀어 6자회담서 논의하는 게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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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독자적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문제는 6자회담에서 논의하는 게 낫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사찰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인 한스 블릭스(Hans Blix)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박창규)· 한국수력원자력·한국원자력학회(회장 김시환) 공동 주최로 7월14일~8월24일 청주서 열린 세계원자력대학 여름학교에 특별 연사로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중앙일보 통일문화 연구소 안성규 부장이 지난 24일 블릭스 사무총장을 만나 북한 핵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곧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논의해야 할지 의견이 엇갈린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정상회담은 핵 문제보다는 긴장 완화를 주로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관련 당사국이 함께하는 6자 회담이 북핵 문제 논의에 더 나은 형식이다. 회담을 통해 북한과 관련 당사국 모두 같은 안전보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은 남북과 관련 국가 모두에 중요한 안보 문제다.”

-6자회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현명한 길로 접어들었다. 당근을 사용하는 게 채찍보다는 낫다. 북한은 자신의 안보를 핵무기를 통해 지키거나, 외부 보장을 통해 확보하거나 어느 쪽이라도 선택할 수 있다. 외부 안전 보장이 얼마나 진지하고 믿을 만한지는 북한 스스로 판단해야한다. 그러나 회담을 하면서 동시에 채찍을 휘두르면 북한은 '외부 보장 필요 없다. 핵무기가 훨씬 낫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 북핵 1차 위기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넘어갔고, 2차 위기는 2.13합의로 해소를 했다. 두 합의를 비교하면 어떤가. 진전이 있나.
“1994년 합의를 지지한다. 그 합의를 통해 북한이 선언한 것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갖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90년대에 걸쳐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중지시켰고 사용 후 핵연료는 저장고에 보관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02년 미국 정부는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원심분리기를 구입했다는 정보를 공개했다.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한 것이지만 북한은 부인했다. 내가 세부 사항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이 북한의 NPT 탈퇴와 사찰관 추방 사태를 만들었다고 본다. 미국의 의혹 제기는 증거도 없는 성급한 주장이었다.”

- 미국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을 확신하는 것 같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HEU에 대해 좀 더 알았다면 더 많이 공개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몇몇 전문가들과 얘기해 봤는데 내 인상은 ‘원심분리기가 있다’는 정도 같다. 그러나 추가 증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 평양은 곧 핵 프로그램을 모두 공개한다고 한다. 북한과 미국의 생각에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미국의 정보를 100%까지 신뢰하지는 않는다.”

- 증거가 약하기 때문인가. 미국 책임론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으로 농축 우라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모른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94년 합의를 부도덕하며 나쁜 거래로 봤다. 그러나 실제론 그런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켜 북한이 2002년부터 재처리를 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그뒤 5년간 재처리를 했다. 엄청난 양은 아니겠지만 94년 때보다 플루토늄 양이 훨씬 늘었을 것이다. 북한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태가 미국의 정치적 행동으로 촉발됐다고 생각한다.”

- 2.13합의는 핵 불능화를 합의했다. 가장 효율적인 불능화 방법은 무엇인가.
“사용 후 핵연료를 북한에서 외부로 반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나 미국에 이전돼 저장 될 수 있다. 이라크의 핵연료는 러시아에 이전됐다. 94년 이래 북한은 핵연료를 건조 저장고에 보관했는데 반출 문제가 협상에서 매우 어려운 이슈가 될 것이다.”

- 미 국무부 관리가 “IIAEA 사찰관들이 북한 시설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검증이 시작되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자유 사찰이 가능했던 이라크와 비교한다면 북한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IAEA 사찰단이 영변에 있지만 북한 전역을 가려면 별도 합의가 필요하다. 과거 IAEA와 북한 사이에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정치적 합의가 있었고 그렇게 했다. 불능화 자체는 시작하면 몇 달 만에 해결될 기술적 문제다.”

- 귀하는 과거 북핵 사찰을 총괄했었다. 당시 예고 없는 자유 사찰이 가능했나.
“기습 사찰이었는지 정확히 확신은 못하겠다. 의심가는 장소에 대한 사찰을 사전 통보했는데 최종적으로 북한은 이를 거절했다. 한번은 받아들였지만 두 번째는 거부했다. 6자 회담이 얼마나 자유 사찰을 구체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 94년에 북한이 제시했던 것 외에 더 많은 시설이 있다고 보나.
“어려운 질문이다. 대답하기가 어렵다. 북한은 터널을 파는데 아주 재주가 있다. 그러나 위성으로 상당히 볼 수 있다. 건설 현장도 위성사진으로 많이 본다. 북한에 대한 위성 정찰은 굉장히 강화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상의 사찰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 뭘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면 뭘 제거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나.
“100% 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IAEA는 97년 '이라크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했다'고 안보리에 보고할 수 있었다. 핵 프로그램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A가 있으면 B’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프로그램 밖의 어떤 곳에 뭔가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이라크엔 핵 인프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미국은 받아들였다. 미국이 이를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9.11이후였다.

확실히 불확실한 영역이 있다. 그런 불확실성을 감내할 것인지는 정치적 판단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를 보여준다. 남아프리카는 핵무기가 여러 개 있다고 선언했고 해체했다. IAEA는 광범위하게 검증했다. 그럼에도 IAEA는 ‘이 나라에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아래와 같은 사찰을 벌였다'고 했을 뿐이다.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수용할 것인지는 정치적인 문제다. 남아공의 경우와 달리 북한은 좀 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 북한의 시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뭐라고 보나.
“북한이 방사화학 실험실이라고 부르는 재처리 시설일 것으로 본다.”

- 고준위폐기물(high-level waste)은 어떤가.
“사용 후 핵연료는 영변에서 가장 의미 있는 존재지만 그 외에도 핵폐기물이 있다. 핵폐기물은 '더티 밤(dirty bomb)'으로 사용될 수 있어 반출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략무기가 아닌 테러 무기다. 심리적 문제다.”

- 경수로 문제는 어떻게 보나
“미국은 지금 부정적이다. 그러나 완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을 반대한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 앞으로 물밑에서 이슈가 될 것이다.”

-화제를 한국의 원자력 기술로 돌려보겠다. 한국의 핵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할 수 있겠나.
“그런 능력을 가진 아시아의 두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예견 가능한 장래에 원자력 국가로 갈 아시아 국가를 꼽아보면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등이 있다.”

- 한국 사람은 아직도 원자력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방사능을 두려워한다.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사능은 도구만 있으면 아주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분야에 축적된 인류의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우리는 장기간 사고 없이 원자력을 운영해왔다. 한국은 원자력 이용 부분에서 아주 독특하게 성공한 나라다. 그 성공은 산업 및 경제 혁명을 보완하고 있다. 나는 한국의 프로그램에 감동받았다.”

한스 블릭스=스웨덴 외무장관 출신. 81년~9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총장을, 2000년 1월~2003년7월 유엔 산하 검증·사찰위원회(UNMOVIC) 단장을 지냈다. 이라크의 WMD 사찰이 주 임무였던 UNMOVIC단장 시절 이라크의 핵무기와 화생방 무기 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 미국과 갈등을 빚을 만큼 독립적이었다. 현재는 유엔 외곽조직인 유엔협회 회장이다.

정리=통일문화연구소 박수성 연구원 (zhuche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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