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안경’- 정희성(1945~)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설합에 넣어둔 안경을 찾아
아버님 무덤 앞에 갖다 놓고
그 옆에 조간신문도 한 장 놓아 드리고
아버님, 잘 보이십니까
아버님, 세상일이 뭐 좀 보이는 게 있습니까
머리 조아려 울고 울었다
아버지를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언제부턴가 옛 선친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살아 있는 것들하고만 사는 까닭인가. 갑자기 나 자신이 처량하고 미워진다. 만사에 대해서 그렇지만 죽은 자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의 편에만 설 순 없는 것이다. 17년 전의 이 시를 읽으니 서먹해진다. 아버지, 하고 큰소리로 밤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울고 싶다.
<고형렬·시인>고형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