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브룩스’(30일 개봉·사진)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브룩스(케빈 코스트너)는 기업경영주로 능력을 인정받고, 지역사회에서 존경받고, 아내와 딸에게 사랑받는 모범시민입니다. 그와 동시에 완전범죄에 가까운 연쇄살인을 남몰래 저질러온 지능범이지요. 그의 핑계는 ‘살인중독’입니다. 남들 눈에 안 보이는 브룩스의 또 다른 자아(윌리엄 허트)가 항상 주위를 맴돌며 살인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브룩스는 이번 한번을 끝으로 손을 씻고 중독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만 누군가에게 목격을 당하고, 이를 빌미로 또다시 살인극을 준비합니다.
브룩스는 자신의 문제가 ‘살인’이 아니라 ‘중독’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졸지에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을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과 비슷한 대목이지요. 열혈 여형사(데미 무어)는 자신의 이혼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와중에도 사건 해결에 몰두합니다. 어렵사리 확인한 단서를 가지고 조금씩 수사망을 좁혀가지요.
정작 브룩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형사가 아닙니다. 바로 딸입니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딸에게 자신의 살인중독 기질이 대물림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합니다. 안 그래도 브룩스는 딸에게 물려줄 게 많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중도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온 딸은 경영수업을 받아 회사를 물려받고 싶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마음이 없는’ 연쇄살인범이 딸에게는 지독히 마음 약한 아버지라니요. 이 아버지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참으로 엄청난 일까지 저지릅니다. 자식에게 뭔가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 역시 아이러니합니다.
스릴러로 시작한 ‘미스터 브룩스’는 공포영화 같은 뒷맛을 남깁니다. 아버지로서 브룩스가 느끼는 공포지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가 아니라 분열된 자아로 설명 가능하고, 번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연쇄살인범도 무섭습니다.
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