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동물들도 살 빼기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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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찌면 무병장수할 수 없다"는 말은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동물도 비만이 되면 몸이 느려지는 데다 번식력도 떨어진다.

동물 350종 3000마리를 보유해 세계 10대 동물원에 속하는 서울대공원이 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원 식구들을 비만에서 구하기 위한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서울대공원은 동물에게 주는 먹이나 사료를 바꾸고 양을 줄이는 내용으로 '동물원 관리규칙'을 개정, 9월 중순부터 시행한다고 26일 설명했다. 서울대공원 동물운영팀 박선덕씨는 "1998년부터 영양가 높은 먹이를 동물에게 주었는데 많은 동물이 뚱보가 돼 10년 만에 식단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물원은 앞으로 동물들의 먹이로 배합 사료를 줄이기로 했다. 대신 야생 상태의 먹이를 주기로 했다. 그동안 동물들에게 익숙했던 '패스트 푸드(배합사료)'를 '슬로 푸드(야생 먹이)'로 바꾸는 것이다. 서울대공원의 코끼리.곰.표범 같은 많은 동물은 갇혀 지내기 때문에 야생 상태의 동물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

◆동물들, '살 빼기 전쟁' 돌입=살과의 전쟁을 가장 치열하게 치러야 하는 동물은 비만이 심각한 초식동물들이다. 코끼리는 배합사료를 7.6㎏에서 4㎏으로 대폭 줄인다. 대신 야생 상태에서 먹는 건초를 31㎏에서 57㎏으로 늘린다. 초식동물들이 풀 대신 배합 사료를 먹다 보니 성격이 거칠어진다는 점도 동물원이 '슬로 푸드'로 전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살이 많이 찐 육식동물은 고기를 적게 먹게 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쇠고기와 닭고기를 합해 하루 4㎏을 먹었는데 앞으로는 3㎏로 먹이의 양이 준다. 호랑이.표범.퓨마 같은 맹수들은 대신 앞으로는 매주 수요일 살아있는 토끼 한 마리를 받게 된다. 야생 상태처럼 사냥 습관을 기르고, 사냥을 하는 과정에서 운동량을 높이자는 취지다.

육식동물들은 매주 금요일에는 고기를 입에 댈 수 없다. 육식동물들이 야생 상태에서는 매일 사냥을 하지 않는 습성을 유지해 주려고 '금식일'을 만든 것이다.

◆동물 영양사가 관리=서울대공원은 동물들의 '식단 개선'을 위해 3월부터 국내에서 유일하게 '동물 영양사'를 뽑아 영양 관리를 맡기고 있다. 영양사들은 각 동물의 식단 짜기에서부터 재료 선정까지 관리하게 된다.

동물원에서는 이와 함께 동물들의 운동량을 최대한 높이는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하고 있다. 동물원 영양사 최정락씨는 "'식용' 용도 때문에 일부러 살을 찌우는 가축과 달리 동물원에선 최대한 자연 상태에 맞도록 동물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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