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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훈령 11조가 '통제의 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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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정홍보처가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강행 추진하는 가운데 '취재 지원'에 관한 규정인 총리 훈령 제11조가 취재 봉쇄 정책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계와 학계는 "현실을 무시한 취재 제한 조항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홍보처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 부처 출입기자들은 공무원에 대한 전화 취재에 있어 전혀 제한받지 않고 있다.

공무원과 사전 약속을 하면 사무실로 찾아가 만나는 대면취재도 가능하다. 해당 공무원이 기자와의 만남을 사전 또는 사후에 홍보관리팀에 통보할 의무도 없다.

홍보처가 이달 초 만든 새로운 총리 훈령 제11조에는 '공무원의 언론 취재활동 지원은 정책홍보 담당부서와 협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기자의 모든 전화 취재와 공무원 면담을 홍보담당 부서가 사전에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다. 심지어 보도자료에 대한 간단한 답변조차 사후에 해당 공무원이 홍보관리팀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했다.

홍보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있는 답변이 한목소리로 나가도록 조율해 국민의 혼선을 줄이겠다는 취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훈령대로라면 기자와 공무원 모두 제약을 받게 된다. 어느 공무원이 어떤 기자와 통화하거나 만났는지 정부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공무원의 입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청사의 한 출입기자는 "공무원들이 브리핑을 통해 이미 발표된 내용 외에는 말하기를 꺼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보도의 단서는 정부 내부자에게서 찾았던 예가 적잖다.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 시행되면 내부자 고발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언론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언론의 취재 기회를 가로막고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정보 근원지라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기자와 공무원의 접촉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정부와 국민 간 대화를 차단하는 결과만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총리 훈령 제11조의 구체적 해석을 둘러싼 혼란도 커지고 있다. '취재 활동 지원'의 구체적 종류와 범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자의적' 해석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 기자단이 '현 수준의 취재 접근권 보장'에 대해 홍보처가 문서로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지금 당장은 반발을 무마하려고 융통성을 보이는 척하다가 막상 훈령이 시행된 뒤에는 '법대로'를 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일선 공무원에게 있어 총리 훈령은 일종의 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곧바로 징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별로 아무리 융통성을 발휘하려 해봤자 총리 훈령의 틀을 벗어나긴 힘들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훈령 조항을 수정하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기본 방향에는 변함이 없지만 기자들의 합리적 요구가 있으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라며 "외교부를 비롯한 각 부처와 기자들 간의 의견 조율 결과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총리 훈령=훈령이란 '상급 관청이 하급 관청을 지휘.감독하기 위해 내리는 명령'이란 뜻으로, 총리 훈령이란 총리가 정부 내 각 중앙행정기관에 내리는 내부 지시를 일컫는다. 대외적인 법적 효력은 없지만 내부적으로 인사와 징계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정부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도 총리 훈령으로 만들어 다음달 초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훈령은 취재 응대, 브리핑실 설치.운영, 기자 등록 및 출입증, 대변인제 운영, 브리핑 시스템 등 총 39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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