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열며

누구를 위한 NLL 논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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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왜 NLL이 설정됐을까. 한국군과 유엔군은 정전협정 협상이 시작된 51년 7월에 이미 한반도 동·서해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엔군과 공산군은 협상 과정에서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지 못했다.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컸다. 특히 사전에 합의한 정전협정 2조 15항에 ‘해상 병력은 육지와 인접 해면을 존중하며 한반도의 여하한 지역에 대해 봉쇄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 놔서다. 유엔군이 장악한 해상을 경계선으로 할 경우 북한은 봉쇄 상태에 빠진다. 정전협정 위반이 된다.

유엔군사령관인 마크 W 클라크 대장은 정전협정 체결 다음달에 NLL을 선포한다. 해·공군력이 월등히 우세한 유엔군과 한국군의 활동만 통제하면 서해상에서도 정전협정을 준수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서해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 지역과의 중간 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부터 12개 좌표를 연결해 설정했다. 따라서 NLL은 국제법적 근거도 지녔다. 유엔해양법협약 121조는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는 도서는 자체 영해를 가진다’고 못박아 놨기 때문이다.

이런 NLL이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남북한이 제2차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한 직후부터다.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다”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신호탄이 됐다. 한나라당과 보수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갈등 기류가 감지된다. NLL 논란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 당국자와 친노 세력이 대거 논쟁에 뛰어들었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남북기본합의서에 해상 군사분계선은 계속 협의한다고 한 만큼 서해 평화 정착을 위해 NLL 재설정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우선 이미 남북 간에 논의를 하고 있는 사실을 왜 간과하는지다. 그간 수차례 남북 장성급회담과 군사실무회담에서 NLL 문제가 논의됐다. 다만 남북의 입장 차가 너무 커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북한이 사문화시킨 남북 기본합의서 중 유독 북한이 요구해 온 조항만을 꺼내 들어 해결하려 하는지도 의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수많은 합의서와 부속합의서, 공동선언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휴지 조각이 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에 관한 합의서’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에 관한 합의서’ 등이 있다.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행됐으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합의들이다.

그 수많은 합의 중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도 계속 협의한다’(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10조)는 조항만을 끄집어 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의 거부로 협의 및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합의서 등은 뒷전에 밀어두고 북한이 요구하는 NLL 재설정 문제를 논의하자고 하는 셈이다. 이러니 국민은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남북 정상회담 성사 합의 과정에서의 뒷거래 의혹까지 제기한다.

어차피 NLL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NLL 재설정은 결코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사안이 아니다.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는 국방장관 회담을 속개해 ‘공동어로구역’과 함께 논의하자고 하면 된다. 정부는 더 이상 NLL 논란을 부추기면 안 된다. 국론만 분열되기 때문이다.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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