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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과열 유아교육-능력개발보다 기능 치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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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아교육이 대학입시 뺨치는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10대1 이상의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입학이 가능하고 유치원원비가 국.공립대학 등록금보다 비싸 학부모의 등이 휘는 우리의유아교육 현실.몇년사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유아 학습지들은 수천억원대가 넘는「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먹고살기 바쁜데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교육시킨다는 것은 극히 일부 부유층에 해당되는 일로 여겨졌다. 유치원 취원율도 1%가 안돼 일반인들에게 유아교육의개념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경제성장.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증대되기 시작했고 80년대의 경제적 호황에 힘입어 일종의「유아교육 붐」이 일고난 뒤부터는「아이들은 놓아두면 저절로 자라게 마련」이라는 사고방식 을 가진 부모들은 더이상 찾을수 없게됐다.
기껏해야 한두명의 자녀를 가졌고 학력수준도 비교적 높은 신세대 학부모들(?)에게 유아교육.조기교육은 자연스런 「의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유아원.유치원을 의무교육에 포함시켜 1백% 가까운 취원율을 보이고 있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보잘것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우리의 유아교육은 과거 10여년간 괄목할만한 팽창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유치원이 대상아동의 절반이하만 수용가능할 만큼교육기관 수가 부족한데다 전인교육보다 기능만을 강조하는 학원,학습지등이 번창하는등 우리의 유아교육은 양과 질 모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게 사실이다.
유아기의 교육이야말로 한 인간의 품성과 자질,잠재적 능력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때 정부가 유아교육에 대해 보다 장기적인 계획과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치원=유치원은 가장 대표적인 유아교육기관이다.
만 4~5세 어린이들이 교육대상이었지만 유아들의 신체발달과 조기교육 분위기에 따라 지난해부터는 만 3세까지 입학연령이 낮아졌다. 93년 현재 전국적으로 유치원 취원이 가능한 3~5세 아동은 약 1백80만명,유치원 숫자는 모두 9천4백84개가있으며 5세를 기준으로 할때 취원적령인구의 절반 이하인 약 47%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80년까지만 해도 전국 유치원수는 9백1개였고 취원율은 불과7.3%였다.60년대초 취원율이 1%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20년동안 6% 정도 늘어난 셈이다.
5共 출범이후 정부는 유아교육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계획아래 사설유치원의 설립을 장려했고 86년에는 전국 유치원수가 80년보다 11배이상 늘어난 1만여개,취원율 54%의 엄청난 신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무리하게 사설유치원을 증설하다 보니 무자격자들이 상가건물 한칸을 빌려 엉성한 시설을 갖춰놓고 유치원 승인을 받은 경우도 부지기수였다.서울교육청에 따르면 93년1월 현재 서울시내 1천3백42개 사립 유치원중 정규대학 유아교육 과를 졸업하고 10년이상의 교사경험을 쌓은 유자격원장이 있는 곳은 3백11곳에 불과하고 무려 77%가 무자격 원장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같은 영세 사설유치원들이 잇따라 문을 닫아 유치원숫자가 턱없이 부족한데도 90년대 이후 전체 취원율이 거꾸로 낮아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유치원들사이의 질적.재정적 격차는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수업료가 일정한 국민학교.고교와는 달리 사립유치원들은 정부의 단속을 피해 제각각 원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유치원의 시설과 수준이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 원비는 80년대말까지 사립이 월 4만~5만원,공립은 1만~2만원 선이었지만 해마다 큰폭으로 올랐고 금년에는 사립유치원이 평균 9만~10만원의 원비를 받아 몇년사이 2배 이상 올랐다. 게다가 수영장.식물원등을 갖춘 강남의 호화 유치원들은국립대학의 등록금보다 비싼 매달 20만원 이상씩의 원비를 받고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유치원의 이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고액 비밀과외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갈등을 조장할수 있다며 서민들이 좀더 싼 비용으로 교육을 받을수 있도록 공립유치원의 설립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취원 대상 아동수가 43만명이 넘는 서울에 공립유치원이 29개,취원 아동수가 2천명 남짓 정도이고 보면 유치원에 관한한 국가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대 李元寧교수(유아교육과)는『선진국들이 대부분 유아교육부터 의무교육을 시작하는데 반해 우리는 기능적으로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국민학교에 들어가야 비로소 교육이 시작된다고 보는 경향이 많다』며『유아교육이 돈만 많이 드는 쓸데없 는 것이라는편견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97년까지 국.공립 6천개,사립 2만2천개의 유치원을 증설한다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예산부족으로 실행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탁아소=보사부가 관장하는 탁아소는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취학전 0~5세의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복지차원에서 돌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국에 5천4백90개(서울 1천5백10개)의 탁아소가 있으며탁아인원은 15만3천명(서울 4만2천명)이다.
16명 이상을 보육할 경우 어린이집,15명 이하는 놀이방으로불리는 탁아시설은 오전부터 밤까지 12시간 이상씩 운영한다는 점에서 유치원과 차이가 있고 6개월~1년간의 육아교육을 받은 보육교사들이 유아들을 돌보고 있다.
탁아원의 입소순위는▲생활보호 대상자▲맞벌이 부부▲일반가정 자녀순이어서 교육보다는 복지차원의 탁아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0~5세의 유아들에 대한 관리를 교육부가 관장하는 유치원과 보사부의 탁아소가 2분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일원화하라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두 부처 사이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원=서울시내에만 약 8천개가 넘는 음악.미술.속셈.주산학원이 있으며 이 학원들중 상당수가 유아반.유아교실등 형태로 유치원과 동일한 프로그램의 유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원들은 한달 원비가 평균 7만~8만원 정도로 정규 유치원에비해 2만~4만원가량 싸기 때문에 서민층 자녀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은 한글.산수등 기능습득을 위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아들의 잠재력 개발,사회성 향상등에는 부정적이라는게 교육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서울교육청 權光子 유아교육장학관은『학부모들은 흔히 읽고,쓰고,계산하는등의 기능을 익히는 것을 교육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같은 기능은 주입식.암기식 수업을 통해 보다 손쉽게 익힐수 있다』며『그러나 유아교육은 단기간에 효과를 보는 기능위주가 아니라 어린이의 신체.인지.언어.정서.사회성의 측면을 골고루 발전시켜 총체적인 잠재능력을 개발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화학원도 盛業 최근에는 국제화.개방화의 붐을 타고 강남 일대에서 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들도 생겨나 성업중이다. 이들 학원들은 1주일 세번 수업에 한달 10여만원 정도의 수강료를 받고 외국인과 한국인 강사가 함께 교실에 들어와간단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다.
외국의 선진교육법을 내세워 교재비.학원비로 1백만원 이상씩 받는 영재교육학원들도 크게 늘어났지만 비영재를 단기간에 영재로만들어 주는 교육은 애초에 불가능 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습지=유아교육 붐과 함께 가장 괄목할 성장을 한 것은 학습지들이다.80년대말 부터 웅진.대교.아이템플등 몇몇 출판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학습지들은 해마다 폭등에 가까운 신장을 거듭해 올해에는 시장규모가 5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집으로 배달해주고 교사가 찾아와 문제풀이를 지도해준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있는 학습지들은 그러나 지도교사 자체가 교육자라기보다 판매원에 가깝고 학습지 내용도 덧셈.뺄셈.한글 익히기등 기능습득 위주여서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지 적이다.
〈金鍾赫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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