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인연, 때론 수호자로 때론 집사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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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07면

이명박 후보의 측근 가운데 외부로 좀체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다. 캠프 살림부터 LKe뱅크·BBK 관련 건까지 그의 역할은 다방면에 뻗쳐 있다. 그런 그를 두고 이 후보의 가디언(수호자)이라고도 하고 집사라고도 부른다.

<'MB 대통령' 꿈꾸는 13人의 정치두뇌>전문금융인 출신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

이 후보의 한 참모는 핵심 측근의 요건으로 △후보의 모든 걸 알고 △입이 무거우며 △배신을 안하고 △본인이 깨끗해야 하는 점을 꼽았다. 이런 요건을 갖춘 이가 김 전 감사라는 것이다.

김 전 감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재차 면담을 부탁하고 캠프를 찾아가서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김 전 감사는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왜 청바지를 입었느냐’고 묻자 “캠프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다 양복 바지를 입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눈에 띄는 것도 싫어서 그냥 이렇게 입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와의 인연을 잠깐 소개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30년 전이다. 외환은행에 다니던 김 전 감사가 1976년 현대종합금융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자 그룹의 실세였던 이 후보를 대면하게 됐다. 국제금융이 전문 분야였던 그는 외환은행 런던지점에서 3년간 경제조사역으로 일한 뒤 돌아와 현대로 옮겼다. “유럽에서 접한 머천트 뱅킹 등에 흥미를 느껴 새로운 금융 분야를 택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감사가 이 후보보다 고려대 2년 선배였지만 그룹 내 위상이 워낙 달라 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사석에서 만난 이 후보는 소탈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어 마음이 끌렸다. 이 후보는 친한 간부들에게 당시 장관들과 있었던 일이나 그룹 내 일화를 재미나게 얘기하곤 했다. 김 전 감사는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에 현대자동차를 빼앗길 위기를 맞았을 때 이에 맞서면서 ‘피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고 말했다.

김 전 감사는 91년 현대를 나와 삼양종합금융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이 후보도 92년 현대를 떠나 정계에 들어섰다. 당시 이들을 더 가깝게 만든 사람이 김 전 감사의 외환은행 상사였던 신철규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 세 사람은 가끔씩 부부동반 골프를 하는 등 친교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터졌다. 셋은 지리산으로 여행을 갔다. “미국에 가서 잠깐 공부를 하면 어떨까”라고 묻는 이 후보에게 두 사람은 “객원교수로 가서 재충전을 하고 오라”고 권했다. “기왕이면 정치 중심지인 워싱턴 DC 인근에 있는 학교를 택하라”는 조언도 했다. 이 후보는 조지워싱턴대의 객원연구원으로 떠났다.

그 무렵 신 전 사장이 작고했다. 이 후보의 시련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했던 신 전 사장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김 전 감사에게 “당신이 이 후보를 꼭 도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때부터 김 전 감사는 본격적으로 이 후보 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미국에 머물던 이 후보는 국내에 처리할 일이 생길 때마다 김 전 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후보가 귀국한 뒤 김 전 감사는 금융계 일을 더 해보려 했으나 이 후보는 “금융기관장으로 가봐야 3년인데 그러지 말고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다. 그러면서 김경준씨의 LKe뱅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시 김 전 감사가 “사업모델이 괜찮은 것 같다”고 이 후보에게 보고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는 “이 후보는 자신의 성장 배경 때문인지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에게 무척 마음을 쏟는다”며 “김씨가 동포라는 한계를 딛고 금융인으로 성장한 것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가 자신이 결정한 일은 절대로 남을 탓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김경준씨 건과 관련해서도 김 전 감사를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와 이번 경선의 살림살이는 다 그의 몫이었다. 캠프에서 위장전입·도곡동 땅 문제나 ‘숨겨둔 자식’같이 껄끄러운 사안을 이 후보에게 물어야 할 땐 김 전 감사가 그 짐을 진다.

김 전 감사는 이번 경선을 보면서 캠프 사람들이 좀 더 악착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후보는 죽 한 그릇을 먹고도 새벽 1시가 넘도록 회의에 몰두하는데 밤 12시만 넘으면 참모들이 흐트러지더라”며 “그런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도 이 후보의 건강을 늘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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