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경제계·문단 ‘영원한 현역’ 김준성 전 부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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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2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때의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조문규 기자]

불과 석달 전 만해도 미수(米壽)의 백발 노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경제를 걱정했다. 5월 29일 본지와의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우리나라 경제를 ‘기름이 떨어져가는 비행기’에 빗대며 “공중 급유라도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자신이 쓴 소설 이야기를 할 때는 청년처럼 눈이 빛나기도 했다.

 24일 오전 별세한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가장 역동적이었던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경제인이자 ‘영원한 현역’을 자부하던 소설가였다. 용처럼 비상하던 한국 경제와 함께 숨가쁘게 내달리면서도 틈만 나면 문학 청년의 꿈을 원고지에 옮겨 담았다.

 1920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고보(현 경북고)와 경성고상(현 서울대 경영대)을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중·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문과를 전공하면 밥 벌어먹기 어렵다”는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상과를 택했다. 해방 직후 양말 기계 두대를 갖추고 대구에서 양말 제조업을 벌였다. 67년에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설립하고 초대 행장을 지내며 금융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제일은행장·외환은행장을 거쳐 한국산업은행 총재와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계 수장을 두루 역임했다. 82년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직을 맡았다. 그는 생전에 “부총리 재임 시절 물가 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낮췄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기업 총수로 변신한 것은 87년 삼성전자 회장이 되면서다. 88년 ㈜대우 회장을 지낸 뒤 95년부터 이수그룹을 이끌었다. 2000년대 초 셋째 아들 상범(46)씨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긴 뒤에도 매일 서울 반포동 사옥에는 출근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는 사돈지간이다.

 말년에 그는 국내 최고령 현역 소설가로 불릴 정도로 식지 않는 창작욕을 불태웠다. 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월간 현대문학에 단편 『인간상실』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들리는 빛』『욕망의 방』등 36편의 장·단편 소설을 남겼다. 고인은 “소설을 쓰는 일이나 기업을 경영하는 일 모두, 남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 남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철학을 밝혀왔다.

40년 동안 매일 새벽 걷기 운동과 냉수 마찰로 건강을 관리해 온 고인은 이달 초 폐종양이 발견돼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별세 직전까지 전국경제인연합 고문 겸 원로자문단 자문위원을 맡았고, 병석에서도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을 담은 책을 완성하겠다며 펜을 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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