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중국 대표단 극비리 방한…고 최종현 SK회장 자택서 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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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던 1980년대 초부터 물밑에서 이뤄졌다."

미국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 전 총재이자 동북아경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 사회학자 조이제(사진.71)박사는 24일 전화 및 e-메일 인터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중 수교 뒷얘기를 공개했다.

조 박사는 90년 가을 "정식 외교관계를 목표로 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을 띤 상호 무역대표부를 설치하자"는 노태우 대통령의 메시지를 장쩌민(江澤民)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게 전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하와이에 체류 중인 조 박사는 "가깝게 알고 지내던 전두환 대통령이 83년 나에게 중국과의 접촉을 시도해 보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 박사는 하와이대학 동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인구문제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81년 3월 한국 여권 소지자로서는 처음 중국에 입국했을 만큼 중국에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던 조 박사를 전 전 대통령이 중국 접촉 창구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84년 10월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허삼수씨가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중국 총리의 승인을 얻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죠. 로켓 전문가였던 쑹젠(宋建) 박사의 도움이 컸어요."

이를 계기로 쑹 박사가 주도해 86년부터 두 차례 중국 대표단의 비밀 방한이 이뤄졌다. 대표단은 일본과 하와이를 경유해 입국, 워커힐 호텔에서 묵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이었던 룽이런(榮毅仁)의 장남 룽즈젠(榮智建) 현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 회장, 톈진(天津)시장이던 리루이환(李瑞環)의 비서실장 등이 대표단에 들어 있었다. 특히 초대 주한 중국대사를 역임한 장팅옌(張庭延)은 당시 중국 외교부 부국장이었으나 베이징(北京)대학 조선어과 부교수로 신분을 바꿔 입국했다. 비밀 대표단의 방한 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제3국장이던 정주년씨가 이 사안을 실무 지휘했다. 대표단은 나의 미국 시카고대학 동창인 최종현 당시 SK그룹 회장의 자택에서 조찬 회동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비밀 접촉은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한 중국 군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90년 초까지 별 진전과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한.중 수교를 위한 본격적인 접촉은 북방외교를 들고나온 노태우 대통령 시절 재차 추진됐다. 조 박사는 "오래 떨어져 있다 보면 결국엔 다시 만나게 된다(分久必合)는 삼국지의 격언처럼 한.중 수교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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