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문예지는 엄숙? 내용·판형·디자인 다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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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Timothy McSweeney’s
Quarterly Concern 23호
McSweeney’s사 발행, 20달러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의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을 알린 선두주자는 맥스위니즈(McSweeney’s) 그룹을 이끄는 데이브 에거스(Dave Eggers)이다. 그는 네 개의 잡지를 내는 소규모 출판 그룹을 지휘하면서 조용한 문화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1998년에 창간된 계간지 ‘맥스위니즈’, 2003년 봄에 창간된 월간문예지 ‘빌리버(Believer)’, 2006년에 창간된, 단편영화, 만화, 다큐먼터리 등을 싣는 DVD 계간지 ‘홀핀(Wholphin)’, 그리고 날마다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잡지 ‘맥스위니즈 인터넷 텐던시’ 가 바로 그의 작품들이다.

 ‘맥스위니즈’는 출발부터 도발적이었다. 1998년 데이브 에거스는 다른 문예지들로부터 퇴짜를 맞은 작품들만 모아 첫 호를 만들었다. 작품 선정이나 편집에는 그의 새로운 감각이 잘 나타난다. 일상을 간결하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유머가 풍부하고 냉소적 아이러니를 잘 표현한 작품들로서 신세대 작가 지망생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전방위적 매체 감각으로 젊은 층의 대중문화적 취향을 포용하고 그 모두를 품격 있는 출판기획에 연계시키는 천부적 편집능력이 그의 성공의 핵심이다.

데이브 에거스
시카고에서 태어나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인터넷 잡지 살롱 닷컴(Salon.com) 편집자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2000년 자전적 소설 『휘청거리는 천재의 가슴 찢어놓는 작품 (A Heartbreaking Work of Staggering Genius)』으로 데뷔, 그 후 두 권의 넌픽션, 다섯 권의 소설을 냈다. 2006년에는 대학살의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수단 출신 흑인의 삶을 다룬 『뭐라니 뭐 (What is the what)』라는 소설로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심에 올랐다.

  에거스가 보여준 문학에 대한 파격적인 접근은 포스트모던 세대의 감각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는 문학을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숨어있다. 문학은 거기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고상한 대상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며 개인적 생활의 내면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다.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글쓰기가 진지한 문학의 고려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보여준다.

 오랜 세월을 두고 권위를 행사해왔던 장르 개념도 일소에 붙인다. 잡지를 열면 목차에는 작가명과 작품명만 있어서 그것이 소설인지 시인지 코미디 대본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작가들에게 30분 이내에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써달라고 해서 게재한 경우도 있다. 글쓰기의 권위를 타파한다고 해서 이 잡지에 실린 작품들이 질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신진 작가의 발굴로 널리 알려졌지만 조이스 캐롤 오츠나 로버트 쿠버, 데이빗 포스터 월러스, 제이디 스미스 등 대표적 작가들도 주요 필진이다. 잡지로선 파격적으로 내셔녈 북 어워드의 결선에도 곧잘 오를 정도이다. 잡지 한 권이 바로 단행본의 역할을 하고 몇 년이 지나서도 계속 팔리는 이런 현상은 문화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계간지 ‘맥스위니즈’의 파격성은 우선 디자인에서 뚜렷하다. 잡지이지만 똑 같은 판형이나 비슷한 디자인을 반복하지 않는다. 13호의 경우 만화만 으로 한 권을 채웠고 17호에선 전단지 뭉치가 배달되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인쇄물을 고무줄로 묶어 출판했다. 잡지가 종이 박스 안에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하고 소설이 수십 장의 카드에 인쇄되어 한 뭉치로 담겨 있을 경우도 있다. 책의 표지안에 머리빗이 들어있는가 하면 누렇게 변색된 광고 조각이 들어있을 때도 있다. 책의 존재에 대한 질문과 인쇄물에 대한 자의식이 낳은 신선한 북 디자인은 연속되는 수상에 이어 스미소니언 박물관 디자인관에 전시되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자, 이 젊은 문화적 에너지가 21세기 미국 문학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 주목하자.

이영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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