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한국전력 지하철공/“네 탓이오” 화인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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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형·민사책임에 체면 싸움도 겹쳐/전선·펌프과열·작업 실수로 맞서
사상 최악의 통신마비사태를 빚은 서울 종로5가 지하 통신케이블 화재원인을 놓고 한국통신·한국전력·서울지하철공사 등 관련기관들의 책임 미루기가 가열되고 있다.
책임규명의 열쇠를 쥔 소방당국이 확인조사를 위한 본격 작업에 들어가기도전에 달아오르기 시작한 이같은 책임공방은 앞으로의 형사·민사상 책임을 누가 지느냐의 문제와 직결돼있어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는 실정. 더구나 이번 사고의 피해가 전국에 미친데다 사회 각 분야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이같은 법적인 부담외에도 회사 전체의 공신력이나 명예와 직결되어 있어 이들 기관들의 책임 미루기는 필사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들 기관들이 이처럼 책임전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비단 회사의 명예실추나 사회적 비난 때문만은 아니다.
84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발생한 통신구 화재사건 당시 동경전화국이 전화가입자들(8만9천회선)에 다음달 전화요금을 감금해주는 형식으로 모두 3억엔 상당의 피해보상을 해줬던 전례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고의 책임기관도 수억∼수십억원의 보상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특히 치열한 국제전화 이용자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통신은 화인규명 결과에 따라서는 단순한 피해보상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뒤따를 수 밖에 절박한 형편이라는 것.
이번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통신은 일단 통신케이블 자체는 흐르는 유도전류의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사고지점을 지나는 6천6백만V 이상의 고압선 유도전압 때문』 『동신구 내에 설치된 배수펌프의 과열』 등을 주장하며 한국전력과 지하철공사측의 책임을 들먹이고 있다. 사고가 난 10일 오후 4시2분쯤 과천 통신망관리소에서 일부 구간의 고장발생 신호를 발견했고 8분뒤 사고지점 케이블밑에 고인물을 펴내는 20∼40마력짜리 모터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경보장치가 올렸다는게 한국통신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측은 『통신케이블 10m위에 6천6백V의 선로가 매설돼 있으나 지중 전력 케이블은 생산 당시부터 동테이프로 둘러싸여 있어 유도전압이 발생할 수 없다』며 『화재발생을 전후해 계전기에 아무런 변동이 없었던 것이 그 증거』라고 강력하게 반박하고 있다.
즉 화인이 최소한 한전측에는 없다는 주장이다.
한편 지하철공사측은 사고직후 서울시에 낸 보고서에서 『한국통신 직원이 이대부속병원앞 케이블 연결작업중 토치램프 작동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국통신측 책임임을 단정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공사측은 인근 지하철역의 직원들이 『7일부터 한국통신 직원들이 통신케이블 용접공사를 벌여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은 이번 사고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장이 이처럼 엇갈리는데다 자칫 공공기관간의 자존심이나 감정싸움으로 번질 기미마저 보여 조사결과에 따라서는 어느 곳이든 치명적인 상처를 피할 수 없는 입장.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만으로는 한국통신측이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 현장 주변의 중론이다.
한편 수사를 맡은 경찰은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정밀 화재감식 결과가 나오기전에는 속단할 수 없다며 함구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만일 화재감식결과 어느 한쪽의 명백한 책임으로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 이번 화재의 원인과 책임소재는 관련기관들의 첨예한 대립속에 끝내 미궁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돌고 있다.<정태수기자>
◎피해보상 어떻게 하나/“어쩔 수 없는 사고였나”에 따라 달라져/한국통신에 일단 책임… 요금 깎아줄수도
한때 전국을 큰 혼란에 빠뜨렸던 10일의 통신마비사태로 인해 통신시설은 물론 많은 통신서비스 이용자들이 상당한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보인다.
통신망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정보화시대에 발생한 사고이니 만큼 이의 책임소재와 함께 피해보상문제가 중대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통신은 사고때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에 대해 보상해주는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보상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현재 전기통신사업법 65조에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불가항력이나 이용자의 고의·실수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보상은 무엇보다 사고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는지 여부가 밝혀져야만 내용이 정해진다. 물론 피해자의 피해정도도 밝혀져야 한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통신장애는 대개가 장마철 수해로 인한 것,즉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간주돼 전화요금 감면정도의 보상만 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경우 서울 을지·혜화전화국 관내 가입자뿐 아니라 이동전화·무선호출 이용자에게도 엄청난 불편을 줬으며,한국통신·데이콤 전용회선을 이용하는 기업체들의 업무가 한때 마비되는 상황을 불렀다. 때문에 그 피해는 종전의 사고와 비교가 안되는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번 사고로 이용자 피해를 낸 사업자는 한국통신·데이콤·한국이동통신·수도권 제2무선호출사업자들이지만 한국통신의 전송구간에서 사고가 생긴 것이어서 통신사업자간의 책임은 한국통신이 질 수 밖에 없다.
데이콤의 경우 전용회선서비스에 3시간 이상 장애가 생기면 장애시간 전체에 대해 회선료를 돌려주는 제도를 시행중인데 서울∼경기,서울∼강원,서울∼인천간 6백여회선(2백여 가입자)은 3시간 이상 불통돼 이에 해당한다. 그 보상을 데이콤이나 한국통신중 누가 하느냐는 문제는 있어도 일단 보상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통신마비로 한국통신이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통신요금 감면이지만 대규모 피해를 본 이용자들이 이에 만족하지 않고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이재훈기자>
◎통신업체 운영현황/한국통신/전화사업 전담… 위성등 영역 확장/한국PC통신/컴퓨터 통신업무… 하이텔도 운영/한국이동통신/휴대폰·삐삐 독점 운영하는 1통/데이콤/정보통신 서비스·국제전화 주력
이번 동대문 통신공동구 화재사고를 계기로 한국통신·한국이동통신·한국PC통신 등 서로 엇비슷한 이름들이 지상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국내 주요 통신업체의 현황을 통해 통신사업이 어떻게 나눠져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한국통신=흔히 「전화국」으로 불리며 국내 전화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기업이다. 지난 82년 체신부에서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분리됐고(현재 한국통신은 지난 92년 개명),전체종사원 6만명에 약 5조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사실상 국내 통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다.
그동안 독점적인 사업영역 때문에 안정된 성장을 해왔고,통신위성 발사·종합정보통신망(ISDN) 구축 등 갈수록 고도화된 사업성격을 보이고 있다.
◇한국PC통신=지난 91년 한국통신과 13개 민간기업의 공동출자로 발족,국내 컴퓨터통신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컴퓨터통신망인 KETEL을 기반으로 출발해 92년에는 모기업인 한국통신의 「하이텔」 통신망까지 이양받아 컴퓨터의 보급확대와 더불어 급속한 성장을 하고 있다.
현재 23만여명의 가입자와 2백60여개의 각종 데이타베이스,1천여종의 컴퓨터통신서비스를 확보해 경쟁대상인 데이콤과 더불어 향후 정보사회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한국이동통신=지난 84년 한국통신의 자회사로 설립돼 그동안 이동전화(핸드폰)와 무선호출사업(삐삐)을 독점적으로 운영,급성장을 이룩해왔다.
지난해 4천1백45억원의 매출액과 5백50억원의 순이익을 냈을 정도다.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대상 1호로 분류돼 최근 사업자선정이 끝난 제2이동통신과 더불어 1통,2통으로 불리며 재계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선경그룹이 한국통신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약 4천억원어치를 매입,대주주가 됨에 따라 완전히 민영화됐다.
◇데이콤=지난 82년 정부의 정부통신사업 육성책에 따라 한국통신·한국방송공사·럭키금성 등 정부와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59억8천만원을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주력사업은 정보통신서비스와 국제전화사업인 「002서비스」. 정보통신사업은 쉽게 말해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도록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예를들어 공중정보통신망 서비스·데이콤 메일400·천리안Ⅱ·데이콤 PC서브·종합예약서비스·신용카드 정보서비스 등이 있다.
또 91년부터는 한국통신이 독점하던 국제전화사업에 뛰어들어 「002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화가 도입된지 1백년만에 처음으로 독점체제를 깨고 경쟁체제를 도입,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앞으로는 국내 시외전화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이효준·남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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