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테러' 그 후 6개월] 판사들 협박에 시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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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최모씨는 지난달 자신의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김모 판사에게 협박을 했다.

최씨는 법원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석궁테러를 저지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와 같은 방법을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며 "세상 사람들은 저보다 파렴치한 재판을 일삼는 법원을 더 비난할 것"이라고 김 판사를 위협했다. 또 "윤봉길 의사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발단은 외환위기 당시 최씨가 강모씨에게 3억원을 빌려주면서 시작됐다. 강씨가 돈을 갚지 않자 최씨는 2000년 강씨 소유 부동산에 대해 가압류 신청을 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강씨가 해당 부동산의 명의를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놔 가압류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씨는 "법원 잘못으로 돈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두 차례나 대법원까지 가는 국가 상대 소송을 치렀으나 모두 패소했다. 그동안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최씨는 올 초 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다 14일간 감치 명령을 받기도 했다. 또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60여 차례 법원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

최씨는 지난달 "거사를 치르기 전에 캐나다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오겠다"며 출국했다. 그는 다음달 귀국할 예정이다. 법원은 최씨가 테러 위협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입국 시 통보를 요청한 상태다. 김 판사와 같은 지역에 사는 판사들에게 '카풀'을 할 것을 권유하고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법원은 일단 법원 내 민원처리위원회를 통해 최씨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되 그가 테러 위협을 그만두지 않을 경우 협박죄로 고소할 방침이다.

◆미온적인 법원=소송 당사자가 판사의 신변을 위협하거나 법정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판사 위협, 법정 소란 사례는 2005년 9건, 2006년 17건, 올 들어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테러 사건을 포함해 3건이 발생했다.

1990년대엔 단순한 법정 소란이 많았으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법관이나 소송 관계인에게 협박, 상해를 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열린 두 차례 재판에서 검사석으로 돌진하려다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법원 청사 내에서는 특정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청원경찰을 배치하는 방법이 있지만 작심을 하고 집앞까지 쫓아와서 테러나 위협을 가하면 대책이 없다"고 털어놨다.

판사들이 사태가 커질 것을 우려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정 소란이 늘고 있지만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구금하는 감치명령은 오히려 줄고 있다. 2001년 52명에서 지난해엔 14명으로 줄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계속 재판에서 마주쳐야 할 사람에게 감치명령을 내리는 데 심리적 부담이 있고 별도의 조서와 결정문을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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