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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백년 후 국보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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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새해 첫 주말 남녘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살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친구들과 큰 맘 먹고 떠난 길이었다. 우리가 대학생이 돼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함께 찾았던 해남을 30년 만에, 그리고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들과 함께 다시 찾았다. 아담한 절 미황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들어가는 길목부터 겹겹이 에워싼 동백은 양지바른 쪽에서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고, 남도의 금강산이라는 달마산 품에 안긴 대웅전은 날렵하고 우아한 자태를 선보였다. 멀리 보이는 진도까지 붉게 물들이는 낙조와 하늘에서 바다로 곧게 뻗은 발그레한 달그림자, '달길'을 따라 지는 새벽달은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한옥으로 새로 지은 절집들이었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기품 있는 기와지붕의 맵시가 단박에 들어왔다. 주지이신 금강 스님께서 특별히 내주신 누각 아래 큰 방은 주춧돌 바위가 그대로 보이는 정갈한 방이었다. 소나무 냄새와 무늬가 온전히 살아 있는 문간 겸 신발장인 마루는 아름답고 기능적인 외풍 방지용 이중문이 됐고, 방안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따로따로 조절할 수 있는 조명은 효과적인 에너지 절약 장치였다. 요사채 밑으로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샤워시설까지 갖춘 세면장은 절집의 불편한 시설을 걱정했던 딸도 놀랄 만큼 편리했다. 못 자국 하나 없이 구멍을 뚫어 이은 나무로 된 기다란 책장은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을 튼실하고 위엄 있게 받치고 있었다.

저녁 예불 후의 다담(茶談) 시간에 이 빼어난 절집의 비결을 알게 됐다. 그것은 10여년간 주지를 맡아 백년 후의 국보를 세운다는 정성으로 집을 지은 전 주지 현공 스님의 원력이었다. 별로 넉넉한 재정은 아니었지만 한옥에 조예가 깊으신 스님은 아름다운 집들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깊이 생각해 설계를 한 뒤 언제나 줄자를 들고 다니면서 한 치 빈 틈 없이 일꾼들로서는 무척 까다로운 주문을 했다고 한다. 연세 지긋하신 토박이 주민들의 오랜 체험은 물론 기상청의 자료를 토대로 큰 비에도 끄떡없도록 과학적으로 지붕의 기울기를 계산하고, 우레탄 막으로 보온효과를 높이는 현대 건축공법을 도입해 지은 한옥이었다.

이렇듯 외형상으로 기품이 있는 절집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안에 모인 사람들로 더욱 빛이 났다. 여름에 열리는 초등학생 한문학당에 왔다가 방학만 되면 다시 와 한문학당 후배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중학생들의 예절 바른 몸가짐과 밝은 얼굴, 반짝이는 눈동자는 보석이었다. 천일 기도로 뜻을 모으고 있는 범종 불사 동참금은 물론 불전함에 넣은 조그만 액수까지 정확히 기재된 영수증을 받아 뜻밖이었다는 친구의 말은 귀를 씻어주는 맑은 샘물이었다. 늦은 밤 살며시 먼저 방으로 들어가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던, 여행 중에도 일요일 미사는 거른 적이 없다고 수줍게 말하며 다음 날 깜깜한 새벽길을 혼자 달려 성당에 다녀온 가톨릭 신자, 모태신앙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들도 기꺼이 동참해준 저녁 예불은 감동의 축제였다.

한 스님의 탁월한 안목과 정성은 자연과 전통, 현대 과학기술이 어우러진 절집으로 남았고, 잘 지어진 절집은 아름다운 유산을 남겨주려는 배려와 조화,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는 마당이 됐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서 보고 들은 깨우침으로 갑신년 새해를 다시 맞는 설날의 소망을 빌어본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백년 후의 국보를 세워 가기를.

윤정로 KAIST 교수.사회학

◇약력: KAIST 인문사회과학부 학부장,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 정책평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