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도둑 못지킨 경찰수사도 게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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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0시36분,2시25분,4시31분,6시7분.
서울은평구신사동 세화슈퍼에 설치된 방범 순찰함에 적힌 3일 새벽의 경찰관 순찰 시각이다.
순찰시각과 순찰자 서명을 통해「이상 없음」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방범순찰 일지다.
그러나 이날 새벽 일지가 들어있던 세화슈퍼의 초록색 순찰함은절도범에 의해 자물쇠 2개가 고스란히 잘려나간 셔터문에 매달려있었다. 『두시간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면서도 가게앞에 차를 대놓고 2중 셔터에 강화유리 문까지 따고 들어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누굴 믿고 장사를 해야 합니까.』 79년부터 슈퍼마킷을 운영해왔다는 韓順禮씨(77.여)는 도둑맞아 텅 빈 진열대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액수도 크고 수법도 보통이 아닌것 같아 전문감식반이 나오길기대했었는데….지문채취도 안하고 그냥 가더군요.』 세화슈퍼 주인 아들인 李在源씨(52)는「전문 절도단」의 범행을 늘상 있는좀도둑 범행쯤으로 넘겨버리려는 경찰의 태도가 못마땅한 표정이다. 피해액이 적어 경찰의 수사대상에도 끼지 못했던 동양슈퍼 주인 李承烈씨(36)는『이런 일은 연례행사』라며『방범용 개까지 키웠는데 모두 헛수고가 되었다』고 푸념했다.
동시에 같은 수법으로 한동네 슈퍼마킷 네곳이 털렸는데도 전혀눈치채지 못한 파출소나 사건발생 하루가 지났는데도 피해 내용조차 파악하지 않은채「쉬쉬」하기에만 바쁜 관할 경찰서….
『신고해 봐야 조서 꾸미느라 끌려만 다니지 범인도 못잡지 않습니까.』 일부러 신고를 안했다는 신사슈퍼 주인 張榮德씨(49)의 말에서「신뢰받는 경찰」이니「시민의 경찰」이니 하는 구호들이 새삼 멀게만 느껴졌다.
〈崔允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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